e메일을 받아본 대기업 직원이라면 결혼식 참석 여부를 두고 적지 않은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반위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슈퍼갑이다. 그런 곳에서 고위간부 아들의 결혼 소식을 시간과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면 공문을 빙자로 한 청첩장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동반위가 어떤 곳인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상생협력을 모색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대기업에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정작 대기업에 결혼식 참석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율배반이다.
전직 고위관료 출신인 혼주는 문제의 공문을 몰랐다고 한다. 부하직원이 알아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정황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결혼식을 의도적으로 알릴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도 문의가 많아 업무에 지장을 받아 그렇게 했다"는 동반위의 해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물론 동반위의 법적 지위는 민간기구다. 직원들 역시 공직자의 범주에 들지 않아 공직자 윤리 및 복무 규정을 따를 의무는 없다. 하지만 업무의 성격과 역할을 본다면 금융감독원처럼 공적 민간기구에 가깝다. 지난해는 법률에 근거한 위원회로 승격되기도 했다. 공직자에 준하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동반위는 해당 직원의 사소한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구렁이 담 넘듯 어물쩍 덮고 넘어간다면 자칫 동반위 활동에 대한 신뢰감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동반위 스스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차제에 행정부 차원에서도 동반위의 애매모호한 법적 지위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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