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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사진은 진실만을 찍는다?

■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br>(다니엘 지라르댕·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지음, 미메시스 펴냄)<br>사회·윤리적 문제 등 역사상 가장 논쟁 부른 사진 73장 엄선해 분석


케빈 카터 '굶주려 죽어가는 소녀를 노려보는 독수리, 수단'(1993) /사진제공=열린책들

아프리카 수단에서 굶어 죽어가는 웅크린 소녀와 그 뒤에서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며 쏘아보는 독수리. 1993년 케빈 카터가 촬영한 이 사진은 '뉴욕 타임스'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다. 백 마디 말, 수 천자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한 사진이었다. 이듬해 카터는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소녀를 구했어야 한다는 인간적 죄책감과 사실 전달을 의도한 사진가로서의 사명감 사이에서 윤리적 논쟁에 시달렸다.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수상 두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렬한 사진 한 장은 사진작가의 자살로 또 한번 유명세를 탔다. 사진은 탄생부터 논란의 진원지였다. 신기술에 대한 놀라움이 먼저였고 미술을 위해 만들어진 사진이 예술의 영역에 편입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 논쟁이 뒤따랐다. 이후 사진은 진실성과 내용 조작의 문제, 저작권과 초상권, 아동나체와 포르노 등 각종 사회ㆍ윤리적 문제로 분쟁의 도마에 올랐다. 스위스 엘리제박물관 큐레이터인 다니엘 지라르댕과 예술 전문 변호사인 크리스티앙 피르케르가 함께 쓴 이 책은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진 73장을 엄선해 논쟁의 핵심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극도의 사실성이라는 특성 덕분에 '사진은 곧 진실'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969년 나사에서 찍은 달 탐사 사진에 대해 전문가들은 연출 사진이라고 확신했다. 소련과의 달 탐사 경쟁에 안달이 난 미국이 사기극을 펼쳤다는 것이다. 1989년 로버트 마스가 찍은 루마니아의 인종 학살 참상 역시 사진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을 일으켰다. 한 남자가 시체 더미 위에서 울고 있고 싸늘하게 식은 갓난아이의 모습까지 보이는 이 사진은 학살의 현장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지만 진실이 아니었다. 시신들은 공동묘지에서 파낸 것이고 아이는 며칠 전 식중독으로 돌연사했을 뿐이며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도 아닌, 연출 현장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는 사진 때문에 송사에 휘말렸다. 현존하는 최고 몸값의 작가인 쿤스는 1988년 두 사람이 강아지 8마리를 안고 있는 '강아지의 봄'이라는 목조각을 만들었고 3점이 36만7,000달러에 팔렸다. 문제는 전업 사진작가 아트 로저스가 1980년에 스캐넌 씨 부부의 부탁으로 찍어준 강아지 탄생 기념 사진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었다. 로저스는 쿤스를 위조혐의로 고발했다. 사건은 전용(轉用)에 따른 소유권 침해의 문제였다. 쿤스는 20세기 미술사 이론을 총동원해 자신의 작업을 항변했지만 무단복제 죄목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로저스의 작품이 대중에게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유명작도 아니며 사진과 똑같은 조각을 '표절'했다는 이유였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입맞춤을 아찔하게 담아낸 '파리시청 앞의 키스'(1950)도 뒷얘기가 무성하다. 파리의 연인을 주제로 한 사진으로 로베르 두아노는 일약 '휴머니스트' 사진가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30년 후 자신이 사진 속 주인공이라며 수익 배분을 요구하는 커플이 두 쌍이나 나타나 법정 공방까지 치달았다. 재판에 이기기 위해 작가는 평생 숨겨온 사실을 그제서야 고백한다. 카페에서 섭외한 젊은 남녀가 연출한 '가짜 키스'였음을. 반전은 또 있었다. 재판 증거로 키스사진 1장을 손에 넣은 고소인은 패소했지만 2005년 경매에 이를 출품해 15만5,000유로를 벌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인 루이스 캐럴은 아동문학과 사진에 열정을 불태웠다. 5살짜리 소녀 앨리스 리델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명저로 남았지만 그의 사진들에는 유아와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도착적 시선이 드러나 도덕성의 지탄을 받았다. 캐럴은 48세 때 돌연 사진을 포기하고 작품의 상당수를 태워버렸다. 오늘날 사진은 개인사 은밀한 곳까지 파고들었지만 그 공적인 역할을 놓쳐서는 안 된다. 책은전쟁과 고문, 인권유린의 현장을 고발하는 사진의 사회적 역할과 시대성ㆍ역사성의 반영에 대해 묵직하게 주장하고 있다.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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