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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키운 건 8할이 실패 경험"

박경훈 제주 감독, 만년 하위팀을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비결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박경훈(49ㆍ사진) 감독은 듣던 대로 축구계의 신사였다. 말끔한 옷차림, 부드러운 화법과 더불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었다. 최근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음료를 마시며 인터뷰를 하던 도중 목이 마르자 종업원을 불러 물을 주문했다. 그는 “여기 물 한잔… 아니 두 잔 좀 갖다 주실래요”라며 굳이 요청하지 않은 기자 몫까지 챙겨 줬다. 만년 하위 팀 제주를 올해 K-리그 챔피언 결정전까지 이끌며 준우승을 일궈낸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실수를 통한 성장’을 내내 강조했다. ◇“축구판을 떠나니 축구가 보였다”= 그는 스타출신 감독이다. 수유중 시절 재미로 볼을 차다가 축구부 감독이 불러 대회에 붙들려 나갈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다. 대구 청구고에 진학한 이후 프로와 국가대표를 두루 거치며 후보 생활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포항제철 선수 시절인 1988년 프로축구 MVP도 받았다. 잘 나가던 축구 스타는 지도자 생활을 하며 축구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청소년대표팀 감독으로 있던 지난 2007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국은 홈의 이점에도 불구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난 실패한 감독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누군가가 축구판에 불러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 현장을 떠나 전주대 교수로 변신했다. 현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으니 그제서야 축구가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며 “축구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제주를 키운 건 8할이 실패의 경험”= 그는 지난해 제주 감독직을 제의 받았다. 3일간 고민 끝에 치열한 축구 현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제주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 선수들에게 한 가지를 강조한다. 누구나 좌절을 겪기 마련이고 사람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 그의 가르침은 즉효약이었다. ‘한 물간 선수’로 평가 받던 김은중(31)은 중국에서 U턴해 올 시즌 화려하게 부활했다. 리그에서 13골을 꽂아 넣으며 득점 공동 4위에 올랐고 공격포인트(23개)는 K-리그 전체 선수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매년 K-리그에서 10위권 밖에 머물며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다른 선수들도 올 시즌에는 제 기량을 100% 이상 발휘하며 제주의 준우승에 힘을 보탰다. 그는 스위스 진출 여부로 고민하는 ‘제주의 젊은피’ 구자철(21)에게도 같은 조언을 한다. 청소년대표팀 감독 시절을 언급하며 “너무 서두르면 늘 부작용이 따른다. 비우면 반드시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라며 “스위스리그는 현재 K-리그보다 수준이 낮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잉글랜드 등 빅리그 진출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제주만의 색깔 키우는 게 목표”= 그는 올 시즌 제주의 성적에 A+를 매겼다. “누구도 우리가 6강에 오를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준우승을 일궈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아직 제주의 색깔 만들기에는 실패했다며 B학점을 줬다. 그는 “유럽의 어느 팀과 맞붙어도 뒤지지 않는 팀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내년에는 마무리, 역습을 강화해서 제주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인터뷰 말미에 어떤 감독을 지향하냐고 물었다. “예전엔 다른 감독이 잘 되는 걸 싫어했어요. 잠재된 제 경쟁자라고 생각했죠. 실패를 경험한 뒤 인생 철학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바비 롭슨 전 FC바르셀로나 감독처럼 되고 싶습니다. 롭슨은 훌륭한 선수, 뛰어난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바비 롭슨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게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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