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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문화산책] 茶山과 秋史와 우전차

고해 속에서 한삶의 저녁길로 걸어들어가고 있지만 요즘 매일 햇차를 마실 수 있으니, 이 또한 자족할 만하지 않은가. 차를 `탐식(貪食)`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차는 따는 시기에 따라 맏물(첫물)차와 두물차 등이 있고, 잎의 여림에 따라 세작려像紡대작 등으로 나뉘는데, 특히 맏물차로서 세작 가운데서도 곡우 전에 따서 덖어 만든 우전차(雨前茶)야 말로 `수중군자(水中君子)`라는 차, 차 중의 명차(茗茶)로 첫손 꼽힌다. 해마다 곡우를 눈앞에 두고 지리산 남쪽 기슭 하동 화개에 전화를 걸어 햇차가 언제 나오느냐, 나오는 대로 빨리 보내달라고 어린아이 젖 보채듯 재촉해왔는데, 차밭 주인이 나의 성화가 귀찮았는지 지난달 20일 곡우가 지나기 무섭게 우전차 두 통을 택배로 보내왔다. 당장 차를 달여 마셨다. 아니, 마시는 게 아니라 한 모금씩 입안에 물고 굴려보기도 하고 씹어보기도 했다. 금세 입안을 가득 채우는 이 은은한 차향…. 그 어떤 미식과 미주에 견주랴. 차를 음미하며 그 옛날 차 욕심이 대단했던 다산(茶山)과 추사(秋史), 하지만 겨레의 위대한 스승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들 일세의 풍류고사 사이의 징검다리 노릇을 했던 혜장(惠藏)과 초의(草衣) 사제도 생각한다. 이 네 사람의 다선(茶仙)이 남긴 전설적 일화까지 되새기니 입안의 차맛이 한결 황홀경이다. 다산은 자신으로 하여금 승속을 초월한 다선일미(茶禪一味)럽模군弩?茶禪不二)의 경지로 이끈 혜장에게 차를 구걸하는 `걸명소(乞茗疏)`를 보내며 이렇게 썼다. “나는 요즘 차만 탐식하는 사람이 되어 차를 약처럼 마신다네. …듣건대 고해를 건너는 데에는 보시를 가장 중히 여긴다는데 명산의 진액이며 풀 중의 영약으로는 차가 으뜸이 아니겠는가. 목마르게 바라는 뜻을 헤아려 달빛같은 은혜를 아끼지 말기 바라네.” 차에 걸신들리기는 추사도 선배인 다산에 못지않았으니, 그는 초의에게 이렇게 애걸반 협박반의 편지를 보냈다. “다만 차에 관한 인연만은 끊을 수도 버릴 수도 없다네. 그러므로 차만 보내주면 되고 답장도 필요없네. 이제 지난 2년간 밀린 차를 보내되 다시는 미루는 일이 없어야만 하네. 그렇지 않으면 백천 겁이 지나도록 마조(馬祖)의 할(喝)이나 덕산(德山)의 방(枋)을 피할 수 없을 것이야!” 5월. 하동과 보성에서 차문화제가 열릴 때이다. 이제 지친 심신을 다시 추스르게 되면 우리 땅 곳곳의 차문화 유적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다. <황원갑(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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