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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ㆍ고유가 문제와 더불어 중동ㆍ중국 등의 공세로 유화업계가 이르면 오는 2008년부터 본격적인 대위기를 맞을 것이다.”(고흥식 삼성토탈 사장) “전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의 석유화학 경기는 피크 근처에 있지만 곧 하강 국면이 시작된다. 경기 하강 초기국면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이 일어난다.”(토머스 콕 맥킨지&컴퍼니 화학담당 아시아 리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원료가격과 중동ㆍ중국 경쟁사들의 추격 속에 낀 유화업계가 생존을 위해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전개해야 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M&A와 사업조정 등을 적극 검토하며 불황에 대비하고 있다. 유화는 호황과 불황이 7~8년 주기로 반복되는 경기순환형 산업이라는 점에서 내년 이후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은) 단지 국내 유화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큰 틀에서 보자면 전세계적인 공급과잉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점에서 세계 유화업계가 대대적인 구조조정 열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최근 유화사 CEO들이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을 준비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독과점 예외적용 등 공정거래법 등의 제도개선을 정부에 건의하는 것은 이 같은 시나리오에 맞춘 사전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샌드위치 유화업계=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영업이익률(나프타 분해 설비업체 8개사 기준)은 지난 2004년 15.9%에서 2005년 9.6%, 2006년 7.1%로 내리막길이다. 2004년 이후 전체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감소한 것. 수익성 하락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고유가는 유화사들의 원료가격을 급격히 밀어올려 채산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외 수요부진에다 해외 경쟁기업들의 증설로 제품가격은 가파르게 하락해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 유화사의 원료인 나프타의 국제 가격은 1월 톤당 530달러대에서 이번주 680달러대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주력 생산품인 에틸렌은 톤당 900달러대로 30%가량 떨어졌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ㆍ이란 등 중동 지역 기업들이 낮은 원가를 무기로 석유화학 제품 생산을 늘려 한국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중동 지역의 에틸렌 제조비용은 톤당 198달러.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아시아 지역의 생산원가에 비해 4분의1 수준이다. 유화제품의 절반가량을 수입해온 중국이 자체 조달비율을 높이고 있는 것도 해외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이 되면 유화제품 자급률이 60%대로 올라갈 전망이다. 그만큼 수입이 줄어든다는 얘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제마진과 나프타 가격은 초강세인 반면 석유화학 제품 마진은 약세”라며 “석유화학산업은 전반적으로 실적개선이 부정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스몰딜 방식 유력=일단 유화업계는 ‘규모의 경제’와 사업조정을 위해 같은 계열사끼리 뭉치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호남계열 유화 3사. 호남석유화학과 롯데대산유화ㆍ케이피케미칼은 최근 2009년까지 합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호남석화 관계자는 “최대한 중복 조직을 없애고 저비용 구조를 실현해 다가올 원가 싸움에 대비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구조조정은 다른 기업간 합종연횡. 이를 위해서는 제도보완 및 자금조성 등을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부실화가 되기 전에 회사를 경쟁기업에 매각하고 사업을 철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유화업계가 소규모 M&A를 하며 사업조정을 하는 수순을 밟아나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유화협회 관계자는 “대만이 경쟁우위에 있는 폴리스티렌은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원료인 스티렌모너머의 가격은 상승 추세”라며 “PVCㆍ폴리에틸렌ㆍ폴리프로필렌도 같은 처지에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유화사들이 경쟁력이 없는 품목을 경쟁기업에 주고 전문화를 해 원가경쟁력과 고부가가치화를 하는 ‘스몰딜’ 전략을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독과점 등 제도개선 시급=최근 동양제철화학이 미국 컬럼비안케미컬을 인수한 것을 놓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법규에 의한 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제약이다. 유화업계는 바로 이 같은 점을 지적, 구조조정을 위해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M&A를 하고 싶어도 정부의 독과점 규제가 암초가 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심사 등에서 공정거래법 규정에 의해 걸리는 (독과점) 시장점유율 제한을 국제 수준에 걸맞게 완화해줘야 한다”며 “그래야 업체가 향후 딜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상 산업자원부 철강화학팀장은 이와 관련, “유화업계가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데 공정거래법이 제약이 된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협의할 것”이라면서도 “아직은 결정된 바 없다”고 한발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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