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서 물러난 지 8개월여 만에 29일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에 임한 윤증현(사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현 경제위기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냉철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의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정책 처방과 관련, “총력전을 펼치는 현대전처럼 현 금융위기 대처는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는 물론 추가적인 금리인하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며 “불신과 불안감으로 모두 돈을 꽉 쥐고 있는데 그 돈들이 스스로 풀릴 때까지는 유동성을 팍팍 풀어주고 상황이 진정됐을 때 (환수) 정책을 펼치면 된다”고 강조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상황이 진정되면 구조조정은 물론 초과 유동성 환수를 위한 시의적절하고 정확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전 위원장은 특히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에게 현재의 고통을 함께 감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국가 질서의 확립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제위기 상황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경제상황을 진단한다면.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미국 월가의 지나친 탐욕이 전세계의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금융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초저금리로 인한 초과 유동성이 원인이었다. 유동성으로 발생한 치유 방식이 결국 금리를 낮추고 추가 유동성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문제 해결 방식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잉태한 셈이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마무리되지 않겠느냐.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른 금융 위기를 잉태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했는데. 각국의 해법들에 문제가 많다는 이야긴가. ▦정부가 나서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다. 시장에 맡길 수도 없다. 다른 위기를 잉태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초토화될 때까지 방치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다른 나라도 다 자국의 위기 해결을 위해 유동성 풀고 하는데 우리만 팔짱 낄 수는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정책처방을 써야 하나.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현대전은 총력전 아닌가. 예전에는 백병전이 있어서 전후방이 있었다. 지금은 없다. 현재의 위기 대처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총력전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 역시 비슷한 위기를 함께 겪고 있지 않은가. 누가 먼저 여기를 벗어나냐가 중요하다. 위기대처를 선재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재적인 대처가 안될 경우 카운터어텍(비슷한 시기의 대책)이라도 해야 한다. 감세와 재정 모두 필요하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가 다소 모순되지만 적자재정을 통해서라도 해야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재정이 가장 여유가 있다. 적자국채 발행도 여유가 있는 셈이다. 금리는 더 낮출 필요가 있다. 상황을 점검한 뒤 더 낮춰야 빚을 상환하기가 쉬워진다. 가계ㆍ건설업체의 금융부담을 덜어줘 일단 숨통을 틔워줘야 하지 않겠나. 유동성도 더 공급해야 할 때다. 당장 물가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고 지금은 돈이 돌도록 해야 할 시기다. -위기의 해결에도 선후가 있을 텐데. ▦기업ㆍ금융회사부터 살려야 한다. 시시비비 가리고 옥석 가리기는 나중에 해도 된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하지 않겠나.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합돼 글로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번 무너지면 못 따라간다. 유럽 등의 국가에서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금을 전액 보장한다거나 은행의 차입 보장 선언 등은 우리보다 빨랐다. 솔직히 우리는 한 템포 늦었다. 현정부가 대책의 타이밍을 잃었던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 대책은 선제적으로 충분하게 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ㆍ금융기관들은 구조조정과 원가절감 노력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은 월급을 턱 없이 많이 받으면 안 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문제 등도 제기된다. 장관 교체 여론도 비등하고. ▦글쎄 현재 상황이 경제정책 수장을 하나 바꾼다고 해결될 성질일까. 정기국회가 두 달 남았는데 장관을 바꾸면 청문회다 뭐다 해서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 현재의 상황은 그 정도의 여유가 없다. 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할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실세 한 둘을 중심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해결되다 보면 시스템 작동이 안된다. -시스템으로 문제 해결한다는 것은 부총리제도의 부활을 의미하는지. ▦그런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모든 결정을 할 수는 없다. 현재 상황에서 경제부총리제가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사령탑이 있으면 그만큼 문제해결의 근원을 보고 특정부처의 조직이기주의를 넘어서 보게 된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질서, 대외관계, 국회 관계 등 4가지 분야에서 정부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본다. -은행들의 과당 경쟁 등이 문제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들은 덩치 키우기 경쟁을 해왔다.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무리가 따랐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중 상황을 정리한 뒤 금융기관의 행위에 대해 단단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최근의 위기대처 과정에서 한국은행의 태도다.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게 다소 아쉬운데 은행이 외환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환율이 오르게 됐다. 한국은행은 처음부터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은행에 경쟁입찰을 시켰어야 했다. 경쟁입찰은 한국은행이 갖고 있는 금융기법 중 하나다. 경쟁입찰을 통한 외환공급은 은행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진짜 급한 은행은 입찰에 참여하겠지만 높은 금리를 지불하고까지 외환을 공급 받을 경우 외환사정 급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셈이다. 유동성 문제 없는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이 명확히 갈린다. 늦게나마 중앙은행이 적극성을 띠면서 경쟁입찰로 은행들에 달러 공급하는 것은 다행이라고 본다. -주식시장의 경우 외국인의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다. ▦주식시장의 경우 외국인의 주식처분으로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외국인의 지분은 많을 때는 44%까지 갔다. 현재는 외국인의 이탈로 28% 안팎 수준인데 아직도 25% 수준까지는 내려와야 한다. 선진국도 평균 25% 수준이다. 외국인의 비중이 높으면 그만큼 자본시장에서 대외의존도가 너무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외국인은 주식시장으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본다. -정작 중요한 게 외환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렇다. 주식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게 바로 외환시장이다. 환율은 안정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널뛰면 안 된다. 기업들은 외환시장에서 위험회피를 위한 헤지를 하는데 환율이 널뛰면 이것도 어려워진다. 내년이 매우 중요하다. 국제수지 관련, 대내ㆍ대외 균형을 잘 맞춰야 할 것이다. -마지막 금감위원장이었는데 최근 금융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붙여 놓아야 한다. 조직 통합은 조직개편의 문제니까 말할 것은 아니고 한 건물을 같이 쓰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같이 일을 해야 할 두 기관을 너무 멀리 떼 놨다. 금감원에서 모든 자료를 받고 수시로 보고받고 해야 하는데 길거리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나. ● "주택대출 규제 지나치게 풀면 안돼"
투기지역 해제통한 LTV·DTI 완화가 바람직 윤증현 전 위원장은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주택담보대출(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라는 생소한 금융제도를 도입, 좀처럼 잡히지 않던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는 최근 정부의 주택 대출 규제 완화 움직임과 관련, "시장의 상황에 따라 부동산 대출규제에 손을 대는 것은 맞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대출규제를 지나치게 풀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그나마 우리나라의 경우 LTV나 DTI를 통해 부동산대출을 묶었기 때문에 미국 등에 비해 금융위기의 정도가 덜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출비율이 49%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부동산의 가치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도 주택대출로 인해 금융권의 부실이 심화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최근 부동산시장의 침체로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LTV나 DTI의 폐지 주장에서 대해서는 "완화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폐지나 지나친 완화는 안 된다"면서 "미국의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주택대출이 100%를 넘어 부동산가치보다 높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투기지역 해제를 통해 LTV나 DTI가 자동적으로 완화되는 수준에서 부동산 대출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LTV나 DTI를 완전 폐지하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투기지역ㆍ투기과열지구 해제를 통해 부동산금융규제의 완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윤 전 위원장은 "솔직히 주택을 살 때 40%의 대출만 받아도 이후 원리금을 갚아가는 과정에서 부담이 크다"면서 "대출비율이 60%를 넘을 경우 나중 부작용은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전 위원장은 또 "제도 도입 이전 1ㆍ2금융권을 통한 부동산담보대출이 100%에 육박하기도 했었다"면서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일부 반대도 거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국무회의에서조차 일부에서는 반대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당시 LTV나 DTI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냐"고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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