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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52.모스크바 관광

제7회 모스크바 국제도서박람회에 참가한 우리 일행은 도착 다음날부터 교대로 시내 관광을 했다. 내가 일행 몇 사람과 처음 간 곳은 붉은 광장이었다. 모스크바 시내 중심에 있는 붉은 광장 주위로는 크레믈린궁의 성벽이 있고 그 위에는 21개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 벽돌로 쌓은 성벽 옆에는 레닌 묘가 있었는데 소련 사람들의 존경심이 대단해서 매일 3,000∼4,000명이 찾는다고 했다. 죽은 지 60년이 된 레닌의 모습은 흡사 잠자는 것처럼 유리관 속에 누워 있었다. 크레믈린궁 오른쪽에는 아름다운 바실리블라제누이 성당이 있었다. 성당이 완성된 후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러시아 황제는 성당을 설계한 사람이 두 번 다시 이처럼 아름다운 성당을 설계하지 못하도록 죽였다고 한다. 성당 외에도 모스크바에는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운 성당이 많았다. 그러나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부분의 성당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종교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주의 이념 때문이었다. 시내의 건물들은 크게 높지 않았지만 규모가 크고 질서있게 들어서 있어서 철저한 계획 아래 세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건물 외벽 높은 곳마다 요란한 구호가 있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또 서울처럼 활기차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도시전체 분위기는 어둡고 무기력하게 보였다. 다만 거리 곳곳에서 가로등에 기대거나 도로 옆 벤치에서, 나무에 기대 앉아서 책 읽는 사람들을 수시로 볼 수 있어 그것만은 몹시 부러웠다. 우리 일행은 서커스 전용극장에도 가고 볼쇼이 극장에서 그 유명한 발레공연도 봤다. 공연장은 어디나 화려하고 웅장했다. 레닌 도서관에 들렸을 때는 그 웅장한 규모나 장서에 압도당했다. 동서양의 고전에서 현대도서에 이르기까지 보유한 도서만 3,000만 권이 넘을 뿐 아니라 전 세계 도서를 끊임없이 구입해서 보충하고 있다니 책을 아끼는 정부, 독서를 많이 하는 국민임이 분명했다. 모스크바 시내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100개도 넘는다. 모두 둘러보자면 아마 몇 달이 걸릴 것이다. 그 중 우리는 레닌박물관, 푸슈킨미술관, 중앙박물관, 톨스토이 기념관 등 몇 곳만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봤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시내 중심가에 대중식당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교외에 북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평양식당이 있다기에 찾아갔다. 식당 경영자나 조리사, 종업원들은 모두 북한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주메뉴는 불고기와 냉면이었는데 김치도 맛있고 음식도 입에 맞아 기분 좋게 먹고 보드카며 북한의 들쭉술도 한두 잔씩 마셨다. 우리가 남한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식당 지배인은 매우 반가워 했다. 그런데 우리를 부를 때마다 `동무, 동무` 하는데 그 호칭이 익숙치 않아 매우 어색했다. 더구나 8순이 다 되신 을유문화사 정진숙 회장에게도 젊은 지배인이 동무라고 부르니 듣기에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동무가 뭐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시오"라고 했더니 벌컥 화를 내면서 "선생은 무슨 선생이오. 내가 저 사람한테 배운 게 없는데 어째서 내 선생이 된단 말이오"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한참 식사 중이던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당신들한테 안 팔겠소. 돈 안 받아도 좋소. 장사 안 해도 되니 나가시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식당 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는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두어 사람이 지배인을 달래 밖으로 데리고 나가 설득을 했다. 남한에서는 연세 많은 분을 존경해서 초면일 때는 대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고. 그렇게 겨우 무마시키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러자니 불고기 맛도 냉면 맛도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겨우 식사를 마친 우리는 쫓기듯 식당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도서전이 끝난 뒤 우리는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로 불리는 키에프와 레닌그라드 관광을 하고 헝가리와 체코를 거쳐 유럽으로 해서 귀국했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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