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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성 자산 88조원, 실탄은 넉넉…알짜매물 헐값에 사들이자”
입력2011-09-30 16:36:27
수정
2011.09.30 16:36:27
우리투자증권 투자은행(IB) 부문 실무진들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4박5일간 유럽 재정위기의 근원지인 그리스를 방문해 여러 기관과 기업을 두루 실사했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최근 값싼 공기업과 국영자산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남유럽 시장상황을 살피기 위해서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남유럽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팀까지 꾸렸다. 출장을 다녀온 우리투자증권의 해당 실무자는 “남유럽 관련 TF를 수시로 운용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제의가 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글로벌 경기둔화로 비틀거리는 선진국 기업을 인수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각종 악재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을 맞은 것과는 달리 국내 기업들은 이에 대처할 만한 충분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591개사의 현금성 자산은 총 88조4,000억원으로 지난 2009년보다 3조3,000억원이 더 늘었다. 여기에 비상장회사들을 포함하면 국내 기업들의 실제 현금 보유량은 이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인수ㆍ합병(M&A)에 대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금융권이다. 이번 유로존 위기로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1차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만큼 기회가 먼저 온 데다가 올해 각사의 이익 전망도 밝게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그동안 소규모 교포은행 정도에만 관심을 가졌던 업계의 관례를 깨고 미국 현지 은행 인수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KB금융지주와 산은지주도 주가가 폭락한 해외 금융기관 지분 인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강만수 산은지주회장은 지난 29일 “세계경제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반대로 한국경제는 우려가 지나칠 정도로 강하고 괜찮다”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M&A를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세계 금융회사들의 주가가 많이 떨어져서 기회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1년 반 정도 있으면 세계 금융산업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우리투자증권과 미래에셋이 적극적이다. 지난 5월 타이틀리스트에 이어 지난 6월과 7월 대만의 타이완라이프자산운용과 캐나다 상장지수펀드(ETF) 전문 운용사인 호라이즌 베타프로를 인수했던 미래에셋은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의 명품업체 인수를 저울질 하고 있다. 삼성증권도 현재 M&A 대상으로 검토하는 기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국에서 나오는 매물의 업종이 점차 다양해 짐에 따라 산업계도 M&A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그룹은 최근 미국 태양광 관련 벤처기업인 ‘크리스탈솔라사’사의 지분 일부를 인수했으며, SK그룹도 중국의 2차전지 핵심소재 기업 ‘엘리트코니(Elitconi)’의 지분 51%를 인수했다. 이밖에 삼성전자가 현재 해외 소프트웨어 업체나 헬스케어 업체를 M&A 대상으로 물색 중이고, 두산중공업의 경우 독일의 친환경 발전용 보일러 생산업체인 ‘AE&E 렌트예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M&A를 통해 시장과 기술을 단시간 내에 확보하는 투자를 선호하게 된 만큼 공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대기업들의 현금보유량이 많은 만큼 M&A를 위한 ‘실탄’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원화약세와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 등을 충분히 감안해 M&A를 추진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30일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1,178원10전까지 오르는 등 최근 급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경영상태가 부실한 기업이나 정보가 불충분한 기업을 무리하게 인수할 경우 M&A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어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첨단 기술 확보를 위한 대기업들의 M&A 움직임과 의지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경기 불안 때문에 단기적으로 의사결정이 보류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증권의 기업금융(IB) 관계자는 “매물로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M&A를 결정해야 한다”며 “현 위기가 언제 회복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보가 부족한 외국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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