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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1987년 체제의 부정적 잔재 없애야


근로시간면제 제도와 복수노조 제도 시행은 지난 1987년 체제 종식을 가리킨다. 1987년 체제의 마무리로 합의된 과제가 적어도 법제적으로는 충족됐기 때문이다. 또 1987년 체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민주노총으로 결집된 노조의 노동운동으로 대변될 수 있다. 그것은 민주화와 등치된 '전투적 실리주의'운동이었으며 '선파업ㆍ후교섭'전략으로 노조와 노조 간부는 법제만이 아니라 경제적ㆍ정치적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 사용자는 기세에 눌려 회피적으로 대응하고 정부는 정치권의 풍향에 흔들리는 가운데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짐으로써 1987년 체제는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대변되는 1997년 체제도 독과점적 노조체제와 노조 전임자 급여에는 실제 손을 대지 못한 까닭에 전투적 실리주의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그렇게 미진했던 과제들이 일단 정리됨으로써 이제 1987년 체제의 종식에 따라 전투적 실리주의도 실체적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1987년 체제에 이어 1997년 체제를 통해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단련된 사용자들이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노사관계에 대해 일관된 정책기조를 정비한 정부의 대응도 대응이지만, 무엇보다도 전투적 실리주의 자체가 가져온 노동운동 내부의 위기 때문이다. 복수노조 제도 시행 이후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존 노동단체로부터의 이탈현상은 시작이 아니라 끝 무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혁법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에는 1987년 체제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노사 당사자들이 1987년 체제의 경로 의존성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노동계가 1987년 체제를 정리하는 개혁법제 자체를 무산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이에 정치권이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최근까지 보여왔다. 시행 이후에도 이들 어느 하나 수구적 행태를 청산하려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이들이 명시적으로 개혁이 '불가역(不可逆)'임을 인정하고 개혁법제 정착에 힘을 보태지 않은 상태에서 1987년 체제의 종언을 선언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 될 수 있다. 사용자 역시 일부이기는 하지만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회피적으로 법제를 우회하고자 하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보호를 회피하려는 것이다. 내부 노동시장의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은 제쳐두고 사내 하도급 등의 방식으로 피해 감으로써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불법파견이라는 법원의 결정을 즉각 수용해 시정하기보다는 법리다툼으로 끌고 가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은 1987년 체제의 실질적인 종식을 지연시킬 뿐이다. 법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물리적ㆍ정치적 압력을 동원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타성은 일부 운동권과 노동계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미 정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정리해고 건도 말하자면 노사의 버티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재까지의 전개과정을 보면 법 절차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딱한 실정이다. 고위 공직자의 어리바리한 언동과 정치권의 '절제와 균형'의 결여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모두가 청산돼야 할 1987년 체제의 부정적 잔재들이다. 1987년 체제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과 원칙의 준수가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1987년 체제의 부정적 잔재는 우리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돼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올 것이다. 그건 노사 당사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이제부터라도 노사관계 주체는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집단이 '무리(群)'를 이루면 '무리(無理)'해도 좋다는 타성을 벗어 던져야 한다. 법과 원칙의 바탕 위에서 1987년 체제 이후의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 발전의 비전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노사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때 1987년 체제는 비로소 '지양(止揚)'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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