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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9월12일] <1499> 핵 연쇄반응


1933년 9월12일, 영국 런던.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무심코 바라보던 한 외국인의 뇌리에 세상을 바꿀 만한 착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핵의 연쇄반응!' 숙소로 돌아온 그는 연구에 몰두해 1년 뒤 '핵 연쇄반응(nuclear chain reaction)'으로 특허를 따냈다. 핵 연쇄반응이란 하나의 핵 반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ㆍ분열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것. 핵폭탄의 기본원리다. 원자력 발전도 '적절하게 제어되는 핵 연쇄반응'이다. 핵분열의 개념을 최초로 파악한 주인공은 레오 실라르드(Leo Szilardㆍ당시 35세). 헝가리에서 태어나 1차대전 때는 군장교로도 복무했으나 점점 심해지는 유대인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피신한 난민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제자로 베를린대를 수석 졸업한 과학도였던 그가 핵분열에 관심을 가진 동기는 두 가지. 영국 망명 이후 읽은 공상과학 소설가 HG 웰스의 소설 '풀려난 세계'에서 등장하는 원자폭탄의 현실화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던 때에 당대의 물리학자인 러더퍼드경의 '원자에너지의 이용은 요원하다'는 강의를 듣고 핵 연구에 매달렸다. 1938년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자리를 얻은 그는 이탈리아 출신인 페르미와의 공동실험을 통해 핵분열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실라르드 청원서)를 보낸 것도 그의 종용에 의해서다. 핵폭탄의 숨은 아버지인 실라르드는 막상 원자폭탄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현실을 목도하고는 전공을 핵물리학에서 원자생물학으로 바꾸며 1964년 66세로 사망할 때까지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 운동에 여생을 보냈다. 만약 그가 길거리에서 핵분열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실라르드 청원서를 보내지 않았다면 핵무기는 좀 더 늦게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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