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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2차 대전후 영국과 일본

1940년대 후반,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과 일본 두 섬나라 중 20년 후 어느 나라가 전후 경제를 더 잘 꾸려갈 것인가를 내기했다면 누구든 간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영국에 승부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석은 옳았으나 결과는 틀렸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나라였을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직후 새로운 공장ㆍ기술 그리고 주도권을 잡은 일련의 신제품을 개발한 상태에서 전후시대를 맞았기 때문에 전후 영국 경제는 런던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쟁 직전보다 더 튼튼했다. 영국은 승전국으로서 세계 어디서나 존경받았고 2차 세계대전 이전 형성했던 전 세계에 걸친 무역망과 자금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은 일반적으로 기술과 교육 그리고 경제 측면에서 일본보다 수준이 높았다. 반면 일본은 영국이 산업혁명을 시작한 지 약 100년 뒤인 1868년 명치유신을 계기로 공업화를 시작했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 산업이 크게 파괴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1960년대 후반이 되자 일본은 사람들의 예측과는 달리 영국을 제치고 앞서 나갔다. 그렇게 된 한 가지 이유는 영국은 경제정책을 주로 전통적인 국내 경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한 반면 일본은 세계 경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 경제정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60년대 영국의 ‘복지병’을 비난하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었다. 그러나 일본도 영국이 자국 근로자와 농부들에게 지급하는 사회보장비 지출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경직성이 매우 높은 복지제도인 ‘종신고용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후 20년 동안 영국과 일본의 경제발전 제한 요소나 발목을 잡는 요인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일본)와 과잉 복지제도(영국)가 아니었다. 두 나라 경제발전의 근본적인 차이는 경제를 보는 기본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의 차이,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정책의 차이에 있었다. 일본인 자신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결국 일본 경제는 국제 무역에 의존해 있다. 그래서 국제 경제가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사실 공업국들 가운데 일본은 무역의존도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20% 미만이다.(우리나라는 70%에 가깝다.) 일본의 성장비결은 노동 이동에 있었다. 40년대 후반 일본은 자국의 생산적 자원은 ‘어제의 일자리가 만드는 제품’이 아니라 ‘내일의 제품’에 투입돼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내일의 모습이 어떨지 알려주는 것은 세계 경제라는 점도 인식했다. 따라서 4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후반 사이 20년 동안 일본은 세계 경제 추세를 관찰 분석하고 그 결과를 국내외 경제정책에 체계적으로 활용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국제무역 협상에서 오래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 새로운 산업을 지원했다. 예를 들면 어떤 국가와 통상문제를 협의할 때 자국의 오래된 산업인 면직물ㆍ자전거 혹은 신발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경쟁력 제품인 가전제품의 수출제한을 제안한 적이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은 아무리 규모가 작다 해도 쇠퇴하는 어제의 산업을 상대국에서 양보받기 위해 자국 첨단산업의 수출제한을 제안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의 차이는 두 나라가 세계박람회나 무역전시회에 참가할 때 내세우는 주요 제품에서도 나타났다. 영국은 그 좋은 오래된 주축 상품들, 예컨대 위스키ㆍ모직물ㆍ도자기 등을 크게 선전했다. 그것들은 모두 품질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하나같이 어제의 것들이었다. 일본은 새로운 것을 내세웠다. 예를 들면 전자현미경ㆍ선박ㆍ합성섬유ㆍ카메라ㆍ테이프레코드ㆍ트랜지스터라디오 등이었다. 일본도 영국처럼 관료들이 경제를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관료적 통제를 미래를 위해 활용했지만 영국은 주로 과거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다. 영국은 오래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유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전후 영국은 석탄ㆍ철도ㆍ철강을 국유화했다.(국유기업을 다시 민영화하기 위해서는 마거릿 대처라는 철의 여인의 등장을 기다려야만 했다.) 비록 국유화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면직물 산업을 보호했다. 반면 일본은 자본이 새로운 산업으로 흘러가도록(그리고 오래된 산업으로는 가지 않도록) 하는 데 관료적 통제방식을 이용했다. 일본은 새로운 산업이 교육받은 노동력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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