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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한국경제의 질퍽하고 불편한 진실


언제부터인가 국민소득에 대한 얘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만큼 1인당 국민소득에 목을 매는 나라도 없었는데….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대망의 1980년대에는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달러 시대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던 10월 유신 직후의 기억이 또렷하다. 신문들은 소득 1,000달러에 도달하면 신천지가 열리는 것처럼 특집을 실었다. 중학교 내내 교실의 뒷벽 게시판에는 경제 목표가 내걸렸었다. 목표를 앞당겨 달성한 1977년 한국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국민소득에 관심이 높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영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치적 홍보에 힘을 덜 쓰는 것도 아니다. 자화자찬은 여전하다.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바뀐 유일한 나라'라는 국가 홍보가 대표적이다. 국민소득에 대한 관심이 과연 떨어진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던 차에 불편한 진실 하나를 보았다.

세계평균 소득을 얼마나 될까

먼저 질문 하나. 전세계의 1인당 평균소득은 얼마나 될까. 나이와 학력을 불문하고 어떤 집단에서든 여기에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모른다'는 답변에 '추정해보라'고 강권하면 돌아오는 답의 대부분은 2,000~3,000달러 정도였다. 엊그제 사석에서 만난 경제부처 차관 출신 한 분이 5,000달러 안쪽이라고 답한 게 그나마 근사치다. 윌리엄 번스타인의 명저 '부의 탄생'에서는 2000년 전세계의 1인당 평균소득을 6,000달러로 봤다.

지금은 얼마나 될까. 며칠 전 통계 자료를 업데이트하던 중 놀랄 만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세계의 평균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현재 세계 총인구는 71억2,400만명, 세계총생산(World GDP)은 71조6,663억달러(세계은행 2012년 기준)에 이른다. 나누면 세계인구의 1인당 평균 소득은 1만60달러라는 답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말쯤에 1만달러 선을 넘어섰다.

한국의 2012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2,590달러. 세계 35위(세계은행 기준)다. 마치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처럼 생각하고 소비하지만 순위도 그렇고 세계평균과 격차도 그렇고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은 시점이 1995년이니까 한국의 소득수준은 세계평균보다 불과 17년 앞선 정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추동력에 있다. 한국은 지난 2007년 소득 2만달러 선에 도달한 뒤 리먼 브러더스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환율 급락으로 다시 1만달러대로 떨어져 2010년에서야 2만달러대에 가까스로 안착했다. 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오기까지 15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우리 경제의 허약한 체질을 극명하게 상징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 기간이 5년에 불과하다. 우리와 비슷한 개발도상국이던 싱가포르 역시 5년 만에 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올라섰다. 3만달러 도달 시점을 비교한 성적표는 더 나쁘다. 일본은 10년 만에 1만달러에서 3만달러 고지를 넘었지만 한국은 20년이 걸려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다.

정치적 타협 없이는 경제 낙제 못 면해

성장 속도가 일본보다 두 배 이상 느리다는 불편한 진실을 딛고 일어설 방법은 없는가. 쉽지 않다. 질퍽한 정치 탓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고 갈등만 증폭시키는 정치구조 아래 선진국 추격전략을 짜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법 제정에서 기록물 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정략의 도구로 삼은 정치 분열로는 중대 결정에 대한 합의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힘으로 제3의 자본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자본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제로나 마찬가지다. 결산은 물론 예산심의와 각종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는 국회는 한국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수준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선진국을 추격하고 있다는 생각은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달리기 선수라고 여겼던 한국경제의 실체는 절름발이에 다름 아니다. 정치권의 대승적 화합과 양보가 없는 한 한국과 주요 선진국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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