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억압과 경제난이 겹친 프라하의 겨울. 체코슬로바키아 지식인들이 남몰래 연판장을 돌렸다. 전 공산당원까지 포함한 243명이 지하선언문에 서명을 완료한 시점이 1977년 1월1일. A4 용지 4장 분량의 선언문에는 이런 제목이 달렸다. ‘77헌장(Charter 77).’ 공동대변인을 맡은 시인 바츨라프 하벨이 기초한 선언문은 민주화와 인권존중을 핵심 내용으로 담았다. ‘헬싱키 선언에 명시된 인권이 체코에서는 문서로만 존재하며 수십만명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할 권리를 박탈 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엿새 후에 파악한 공산정권은 즉각 하벨 등 주모자 4명을 잡아들였다. 다음날인 1월7일, 서방 유수 언론에 주모자 체포 소식이 실리며 77헌장은 세계적인 뉴스거리로 떠올랐다. 당황한 공산정권은 즉각 관련자를 석방하는 한편 ‘서명자들은 서방진영으로부터 데탕트(화해) 파괴를 사주 받은 새로운 용병이며 조국의 배신자’라고 몰아붙였다. 과연 그들은 체코를 배반했을까. 헌장이 잉태된 배경은 억압과 독재. 반정부 성향의 한 록그룹이 ‘평화파괴죄’라는 죄목으로 투옥된 게 선언의 직접적 원인이지만 그 바닥에는 소련군 탱크로 뭉개진 ‘프라하의 봄(1968년)’에 대한 갈망이 깔려 있었다. 77헌장그룹은 민의를 등진 집권 공산당으로부터 철저하게 탄압 받았으나 억압과 몇 년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경제난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결국 공산정권은 무혈혁명(벨벳혁명)으로 1989년에 무너지고 하벨은 대통령으로 뽑혔다. 77헌장은 벨벳혁명과 모범적인 체제전환국으로 손꼽히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초석이었던 셈이다. 신년벽두에 우리를 돌아본다. 이땅에는 억압과 차별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행동하는 양심이 정치와 경제를 이끌고 역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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