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동십자각/12월 31일] '旁岐曲逕'과 '一勞永逸'
입력2009-12-30 18:08:45
수정
2009.12.30 18:08:45
연말연시가 되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고 다가올 새해의 화두를 사자성어로 표현하는 것을 본다. 네 글자로 이뤄진 사자성어는 여러 가지 비유ㆍ상징ㆍ교훈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상을 읽을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우선 대학 교수들과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방기곡경(旁岐曲逕)'을 꼽았다고 한다. 율곡 이이의 정치철학서로 알려진 '동호문답'에 나온 방기곡경은 '옆으로 난 샛길과 구불구불한 길'이라는 의미로 일을 하는 데 바른 길을 좇아 순탄하게 하지 않고 억지스럽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설문조사를 한 교수신문은 방기곡경이 많은 지지를 받은 데 대해 "정치권과 정부에서 세종시 수정과 4대강 강행, 미디어법 처리 등 여러 정치적 갈등이 있는 문제를 국민적 동의와 같은 정당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 독단으로 처리해온 행태를 적절히 비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자성어는 누구보다 정치지도자들이 즐겨 쓴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지난 2008년 초 신년의 사자성어로 시화연풍(時和年豊ㆍ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듦)을 내세웠다. 그러나 취임 첫해 MB정부는 쇠고기 파동과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고 이는 올 초 화두로 제시한 부위정경(扶危定傾ㆍ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움)으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국정 3년차인 경인년(庚寅年) 새해의 사자성어로 '지금의 노고로 이후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는 뜻의 '일로영일(一勞永逸)'을 선정했다. 내년에도 땀 흘려 미래 세대와 다음 정권의 탄탄대로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포부가 담겼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조금 억지스러운 감은 있지만 교수들이 올 한 해를 평가한 방기곡경과 청와대가 새해 화두로 제시한 일로영일을 비교해보니 국민이 바라는 바와 청와대가 추구하는 바가 너무도 다른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국민과 소통하며 바른 길, 큰 길로 가달라'며 국민은 대의(大義)를 요구했는데 청와대는 '내년에도 열심히 일해 후세에 잘살자'는 실리(實利)로 답한 셈이다.
새해에는 연초부터 세종시와 4대강 등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할 현안이 산재해 있다. 부디 정부의 현명한 판단으로 내년 연말에는 국민과 정부가 이심전심으로 같은 의미와 목표를 뜻하는 사자성어를 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