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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꺾인 '코리안 드림'의 구명선

환자들 "아프고 갈데 없어 찾아왔다" <br>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누구라도 해야할 일"

"병원비 없어 요기 왔어요" "집에서 단속 피해뛰어내리다 다리 부러졌어요" "아파서 일도 못하고 고향에도 못가요" …. 한국에서 내일을 위해 한밑천 만들겠다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입국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경제력은 물론 건강까지 잃고 오갈 데 없이 헤매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찾은 사람들의 방문 이유들이다. ◆날개 꺾인 외국인노동자 1만3천명 찾아= 지난해 7월22일 서울 가리봉1동 지상6층 건물을 빌려 2∼3층에 진료 시설들을 갖추고 개원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는 내방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중국 동포를 비롯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재외동포특례법이나 산업연수생제도, 외국인고용허가제 등 외국인노동자 관련 제도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일하거나 생활하다가 다친 외국인들이다. 이들 중에는 국내에서 허용된 체류기간이 지나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노동자들이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언어 소통난은 물론 국내에서 번 돈을 이미 고국으로 송금했거나 일자리를 잃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불법체류자의 경우는 신분 노출시 단속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국내다른 병원을 찾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유일한 `구명선( (救命船)' 되고 있다. 불법체류자인 한 중국인 노동자(36)는 "지난 5월20일 집에 있다가 단속반이 나와 도망치려고 난간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져 입원했다"면서 "그동안 일하고받은 돈을 모두 송금해 다른 곳에서는 치료받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역시 불법체류자인 방글라데시인 노동자(46)는 "배가 아파서 찾아왔다"면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른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다가 무료로 치료해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하루에 50∼100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이 병원을 찾고 있으며 개원 1년만에 1만3천명 가량의 환자들이 한번 이상 치료를 받은 것으로 집계했다. ◆경영난속 자원봉사와 사명감으로 유지= 외국인노동자에게 진료ㆍ투약비를 전혀 받지 않고 치료해주는 시설은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힘들다. 자원봉사와 뜻 있는 이들이 힘을 모아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나 역시 재정적인어려움은 깊어만 가고 있다. 서울 방배동에서 30년 가량 소아과의원을 하던 이완주 원장이 자신의 병원을 접고 이 병원 맡으며 3억원을 내놓았고 한라건설에서는 1억5천만원 상당을 들여 병원 리모델링을 해줬다. 또한 국민체육진흥공단, 한신교회 등에서 후원금을 내주는 등 소수의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말에는 익명의 독지가가 지폐 2천700만원이 든 상자를 보내와 중환자실을 마련하는데 쓰기도 했다. 아울러 대한의사협회, 서울시의사회, 전공의협의회 등 의사관련 단체소속 의료 전문가 130여명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평일이나 주말을 이용해 직접 나와 진료를 해주고 있다. 서울 여의도 JC빛소망안과 임 권 원장은 매달 셋째 토요일마다 자원봉사 진료를해오고 있으며 외국인노동자 6명에게 백내장 수술을 무료로 해주기도 했다. 이 같이 다양한 열정들이 뭉쳐 병원이 굴러가고는 있지만 일정하지 않은 후원금에 의존해 인건비와 날로 늘어가는 환자 진료비나 시설 운영비 등을 감당하기는 힘에 겨운 실정이다. 병원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이선희 부대표는 "뜻을 가진 분들의 후원금으로 병원을 1년동안 이끌어 왔으나 얼마나 더 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 지 막막한 심정"이라며 "우리가 포기하면 누가 이들을 돌볼 지를 생각하면 더욱 참담해지곤 한다"고 말했다. ◆의원급 병원에 장례 전용차가 필수 장비(?)=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국내 병원체계상 `의원급' 병원이면서 장의부가 있고 장례 전용차가 두대나 된다. 이 병원은 외부로부터 후원의사를 비친 기업에 선뜻 장례차량 지원을 요청했고 이 차량을 다른 치료시설 못지 않게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병원을 찾았다가 숨을 거두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 외국인노동자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보내는 역할을이 병원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의차 뿐만아니라 병원시설 중에서도 다른 병원과는 달리 외부인들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용도의 공간도 갖고 있다. 누가 봐도 병원 건물 1층 한쪽에 자리잡은 두세평 남짓한 남자 화장실이지만 이곳은 숨진 환자나 사망한 시신을 수습해오는 경우 방부(防腐)처리를 하는 장소로도쓰이고 있다. 전문 업자에 의뢰할 경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병원 건물안에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지도 못해 불가피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병원측은설명했다. 병원을 이끌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의집 김해성 대표는 "갈 곳도 없고 누구도 돌보지 않는 외국인노동자들이나 중국동포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 "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정리해주고 마지막 가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합법 불법 따지기 힘든 `인도주의 공간'=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받는 외국인노동자만큼이나 이들을 위한 병원도 정부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이 병원이 맡고 있는 일이나 병원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법(法)'이라는 잣대만으로는 쉽게 잴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법을 집행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국내에 들어와 정해진 기간안에 되돌아가지 않아 불법체류자인 이 시설이 분명 `범법자 보호소'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범법자가 모이는 이곳에 단속나오는 공무원도 없을 뿐 만아니라 경찰서나 출입국관리소 유치장에서 보호하던 외국인노동자 중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먼저 찾는 곳도 이곳이다. 이처럼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인도주의적 의료기관인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말 이 병원 인근에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종합적인 고충 상담과생활적응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새로 설립했으나 하루하루 꺼져가는 생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병원에는 한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또한 병원 개원 1년 동안 방문한 인사들의 면면으로도 정부의 입장을 알 수 있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한 국내외 인권기관 관계자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지만 외국인노동자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부, 산업자원부, 법무부 등 정부 부처의 기관장은 한 사람도 다녀가지 않았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정부에 대해 이 병원 관계자들이 자주 되뇌는 말이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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