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영국. 영국의 국립 현대미술관인 테이트갤러리는 1897년에 개관한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런 테이트(테이트브리튼, 테이트리버풀, 테이트모던, 테이트 이브스의 4개관으로 구성)의 테이트 리버풀이 2007년 10월 까만머리의 한국인 큐레이터를 채용했다. 동양인 최초로 테이트에 입성한 큐레이터 이숙경(43ㆍ사진)씨. 올해 3월까지 테이트리버풀에서 개막해 독일ㆍ이탈리아로 순회전으로 이어진 백남준의 사후 첫 국제 회고전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지난 7일 티파니코리아 후원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강연회를 위해 잠시 입국한 그를 만났다. 동양적인 외모의 이 큐레이터는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유학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국내 토종파'였다.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재학 중에 26세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됐다. 운 좋게도 국제 전시를 기획하게 돼 현대미술의 국제성을 인식할 기회를 얻었다. 그와 영국이 인연을 맺은 결정적 계기는 1996년에 기획한 영국현대미술전이었다. 당시는 데미안 허스트를 위시한 '젊은 영국 작가들(yBa:Young British Artist)'의 세계적 전성기였다. 이 큐레이터는 이후 1998년에 영국문화원 펠로십으로 영국 연수를 떠나 예술비평 석사과정, 미술사와 미술이론 박사과정을 밟았다. 학업 중에도 그는 독립큐레이터로서 '개성과 익명사이:영국현대미술전'을 기획해 yBa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했다. '자개 작업'의 김유선 작가와 타슈겐트에서 북극까지 가면서 한국인 입양아들을 만나는 '무지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미술관 밖의 미술활동의 재미"를 만끽했다. 또한 한국작가 김기라, 중국작가 류젠화의 개인전을 기획하면서 문화적 충돌에 대한 실험, 식민지적 시각의 역사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져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던 중 테이트리버풀의 공개채용 소식을 듣고 과감히 지원했다. 테이트미술관은 영국 인들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일뿐 아니라 외국인도 독일과 스페인계 몇 명이 고작인 곳이었지만 이 큐레이터는 동양인의 장벽을 넘어섰다. "그동안 내가 했던 전시들, 내 큐레이팅의 방식과 방향, 관심사는 물론 재원 조달 방법, 후원 등의 경험까지 구체적으로 말했죠. 미술관에 들어가면 꼭 해보고 싶다고 얘기한 전시가 바로 백남준 회고전이었어요. 큐레이터는 언제든 실행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머리 속에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내용이 담긴 '서류파일'을 넣고 다녀야 하는 거죠." 그의 야심작 '백남준 전(展)'은 지난해 12월17일부터 올 3월13일까지 테이트리버풀에서 열렸다. 영국 국립 테이트미술관에서 아시아 작가 회고전이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언론이 이례적일 정도로 극찬을 보냈고 테이트리버풀의 겨울 전시로는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몰렸다. "독일 이외의 유럽 지역에서는 생소했던 근대 거장 백남준이 타계한 뒤 최대 규모의 첫 회고전이었고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중요한 작가인지 재조명하고 싶었어요. 그는 단순한 비디오작가나 미디어작가가 아니라 '실험적인 작가'였습니다. 모두가 비디오를 만들고 이걸 공유하는 오늘날 '유튜브(You Tube)'의 개념을 처음 생각한 사람이 백남준이죠. 그의 혁명적 시도가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현실적 측면에서 보여주는 게 제 전시의 화두였어요." 백남준을 계기로, 그리고 문화 다양성을 기회로 한국미술은 더 큰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많아졌어요. 유럽 미술관들은 자신들의 컬렉션(소장품)이 서유럽과 북미 위주인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문화의 중심세력이 다원화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빨리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서울을 비롯해 베이징ㆍ도쿄ㆍ치앙마이 등 다양한 곳에서 미술의 담론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공공영역의 미술지원이 좋은 편이라 더 큰 가능성이 있고요, 지역 비엔날레나 예술축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한국은 객관적으로 경쟁력 있는 곳입니다." 아시아 미술품 소장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그러나 테이트리버풀이 컬렉션한 한국 작품이 아직 서도호ㆍ구정아ㆍ이우환 뿐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더 많은 작가를 유럽에 소개하고 '제 2의 백남준'을 자랑하고 싶은데 말이다. "세계 무대에서 승부할 수 있는 작가는 관람객이 언어적 한계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보여줘야 합니다. 국제적인 미술담론으로 이해되는 작품이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어디에 내놓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굳이 정치ㆍ사회적 주제가 아니더라도 현재적 이슈를 갖고 있는 그런 작업을 하는 작가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재능 있는 작가들이 시장성에 치우치지 말고 국제적인 작가가 될 수 있게끔 많이 관심가져 주시면 더 좋을 거고요." 타국에서 살면 누구든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그 역시 요즘 실감하는 중이다. 이 큐레이터는 "현재는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 국제적인 미술관으로 더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싶지만 나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가를 확보한 우리 한국미술이 국제적으로 발전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들려준 그는 다음날 영국으로 다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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