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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일류 시민의 세계화

‘세계화’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로 ‘국제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세계화’라는 단어를 널리 보급한 일등 공신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지난 94년 말 아시아 태평양 3개국 순방 중에 불쑥 ‘세계화’ 구상을 발표했다. 하지만 내용이 불분명한 탓에 또 다른 ‘깜짝 쇼’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일반 국민은 물론 공무원들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세계화’의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공보처가 국민 계몽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공보처는 세계화란 ‘국제화ㆍ개방화ㆍ한국화ㆍ일체화 등을 포괄하는 한국적 고유 개념’이라고 규정했다. ‘세계화’라는 단어보다도 더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었다. 아직 ‘세계화’에 대한 개념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사회적인 통념으로 세계화를 규정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세계화’라고 하면 ‘세계적인 기준’에 맞게 우리의 생활, 또는 의식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의식 수준보다는 소득, 또는 생활 수준을 세계 일류로 끌어올리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따진다면 우리는 빠른 속도로 세계화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만8,000달러를 넘어섰다. 2만달러를 돌파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이제는 목표도 3만달러로 올라갔다. 소득 못지않게 의식도 세계화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계화 덕분에 해외 유명 관광지 곳곳에서 한국인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해외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화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자기 자신과 가족은 챙기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찾아볼 수 없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안에 탄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투우사를 향해 돌진하는 황소처럼 뛰어들어간다. 국내에서 그랬으니까 LA 산타모니카 해변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담배꽁초를 여기저기에 버린다. 미국인들이 노려보면 이내 ‘니하오마’나 ‘사요나라’라는 말을 내뱉으며 중국인, 또는 일본인 시늉을 한다. 그래도 나라 망신은 피하려고 처절한 애국심을 발휘한다. 조승희 사건이 벌어진 뒤 우리가 보여준 모습도 마찬가지다. 사건 발생 직후 우리는 범인이 한국계가 아니라 중국 등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조승희가 범인으로 드러나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다. 미국으로의 수출은 영향을 받는 게 아닌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 아이가 엉뚱한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미국 비자를 신청했는데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애도와 유족을 향한 위로는 뒷전이었다. 우리만을 생각했다. 나, 우리 가족, 우리나라 사람만 소중히 여길 뿐 세계인에 대한 애정이나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싸장님, 때리지 마세요”라고 할 정도니….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하고 외국인을 똑같은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한 우리의 세계화는 ‘사이비 세계화’일 뿐이다.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됐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이라는 딱지를 떼어낼 수 있다. 소득 수준 향상에만 매달린다면 그것은 ‘3류 시민의 세계화’일 뿐이다.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동시에 남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게 ‘1류 시민의 세계화’다. 이런 면에서 영국인 간호사 에디스 카벨은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카벨은 벨기에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정성껏 치료해준 후 이들이 중립국 네덜란드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카벨은 독일군에 발각된 후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처형을 앞두고 카벨은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애국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증오나 적의를 품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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