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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신화 속 영웅들, 알고 보면 약점투성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1,2(이윤기 지음, 민음사 펴냄)


"거신족(巨神族) 티탄(Titan)의 이름을 딴 타이탄 트럭이 도시를,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이름을 빌린 나이키 운동화가 운동장을, 미의 여신 베누스(Venus)의 이름을 빌린 비너스 브래지어가 여성의 가슴을 누비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 수천 년을 초월한 현대를 살아가지만 우리는 서양 문화의 근간인 그리스 중심의 헬레니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한국을 대표하는 신화학자이자 번역가이며 소설가인 이윤기 씨는 그리스ㆍ로마 신화를 알아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운을 뗐다. 지난해 8월 별세한 고인이 10여 년 이상 준비한 책이 2권의 유작으로 출간됐다. 2,000여년 전에 쓰여진 '플루타르코스 영웅열전'을 치하한 저자는 그리스 로마 영웅들의 삶이 유구한 역사를 관통해 인류의 지혜를 계승하고 있음을 맛깔나게 펼쳐보인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난관을 뚫고 왕좌를 되찾는 테세우스의 신화는 고구려 유리왕 설화를, 그를 독살하려 한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와 닮아있어 동서양의 시공을 넘나든다. 무조건 자신의 기준에 남을 맞추려 하는 횡포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칭하는 것이나 못된 짓거리를 뜻하는 '테르메로스의 장난'이라는 말도 모두 테세우스의 신화에서 유래했다. 성공률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미다스의 손', 풀기 어려운 문제를 의미하는 '고르디오스의 매듭',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쓰는 말인 '주사위는 던져졌다' 등 현대인이 즐겨 쓰는 수사법과 표현법은 상당수 헬레니즘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책은 테세우스 신화로 시작해 세계의 지배자 알렉산드로스, 소크라테스가 사랑한 남자 알키비아데스, 윤회설을 믿은 채식주의자 피타고라스, 서민을 위한 개혁가 그라쿠스 형제, 포에니 전쟁의 영웅인 스키피오와 한니발 등 신화적 영웅을 총망라했다. 영웅을 뜻하는 그리스어 헤로스(heros)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적인 사람(神人)을 의미하고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자기의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저자는 신화 속 영웅들을 "결여된 채로 태어난 사람"이라 분석하며 약점 투성이였음을 짚어준다. "태생적 한계와 고난의 세월을 경험하지 않은 영웅의 이름을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다"는 부연과 함께. 저자는 이 책을 위해 1999~2001년 그리스, 터키, 로마 등 유적지를 누비며 자료를 확보했고 그 덕분에 '읽는 책'을 넘어 '보는 책'으로서 재미가 쏠쏠하다.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이 독창적 문체와 한국적 어휘로 잘 버무려져 술술 읽힌다. 고인이 미처 끝내지 못한 맺음말은 딸이자 번역가인 이다희 씨가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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