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한동안 주춤했던 국제 유가가 약 4개월 만에 100달러 선을 돌파했다. 미국의 경제지표 개선과 북미 지역의 원유수송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단기 호재가 작용한 결과다. 앞으로도 불안한 중동정세와 재고 소진 여파로 국제 유가는 한동안 들썩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가 상승이 경기회복을 동반하지 못할 경우 기업들의 채산성이 나빠지면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12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3.2%(3.22달러) 오른 배럴당 102.5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5월 말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 7월 이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날 유가가 큰 폭으로 뛴 것은 캐나다 원유 파이프라인 업체인 언브리지가 씨웨이 파이프라인의 방향을 쿠싱에서 걸프해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미국 중부와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한결 원활하게 수송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지표 호조 등에 힘입어 몇 주째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WTI 가격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했던 쿠싱의 원유 재고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유가가 단숨에 100달러 선을 넘어선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유가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경기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잘 버티고 있는데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 악화로 중동 국지전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국제유가 상승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원유 수요 증가와 겨울철 난방 수요 증가 등 계절적 요인으로 원유 가격 상승 요인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미국 신용등급강등, 유로존 재정위기 재발 등으로 폭락했던 국제 유가는 지난 달 말 이후 26% 가량 올랐다. 이밖에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추가 양적 완화를 실시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투기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고유선 대우증권 글로벌경제팀장은 "경기가 좋지 않으면 유가가 내리는 게 정상이지만 선진국의 통화 유동성 확대로 실물자산 가치가 올라가고 중동 지역의 불안이 계속돼 유가가 오히려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AP통신은 "미국과 중국의 실물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한 가운데 미국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 것이 국제유가 상승의 원인"이라며 "이란 핵개발에 따른 중동 리스크와 석유개발기구(OPEC)의 감산 가능성 등도 유가 강세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