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관계를 체제유지와 대외여건에 따라 쥐락펴락하며 적절하게 이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과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지며 남북관계에 급진전을 이뤄내는 듯하다가도 대포동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기도 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남북관계를 이용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 2000년.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유훈통치'에 집중하던 김 위원장은 2000년 김 전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6ㆍ15공동선언과 남북경협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해빙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10월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2차 북미 핵 위기가 불거졌고 남북관계는 냉각됐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남북관계는 얼어붙어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보유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못박으며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김 위원장은 2006년 5월, 경의선 철도 연결 합의를 깼고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강행해 남북관계는 아예 단절되는 위기에 처했다. 남북관계 위기가 풀린 것은 2006년 11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전환하면서 핵 문제의 돌파구가 열린 후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갈등을 겪는다. '비핵ㆍ개방 3000'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김 위원장을 자극하며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했다. 대화가 단절된 남북관계는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에 이어 연평도 포격 도발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올 들어 이 대통령이 남북 대화 채널 교체 등을 통해 남북관계 전환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를 하고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등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은 남북관계를 안갯속으로 빠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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