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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공계는 인디언(?)

정문재 <정보산업부장>

그랜드캐니언이나 옐로스톤은 미국 단체관광 상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정 메뉴다. 특히 그랜드캐니언은 길이가 277마일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입을 쩍 벌린 채 감탄사만 연발하다 돌아오게 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그랜드캐니언의 웅장한 경관만을 머리에 간직한 채 돌아오지만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놓치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인디언들의 삶이다. 그랜드캐니언에는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이 있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300여개의 인디언 보호구역 가운데 하나다. 거의 모든 보호구역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된다. 계곡의 깊이가 최고 1,700미터에 달할 정도니 농사는 지을래야 지을 수가 없다. 보호구역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척박한 땅이라 먹고 살 것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싸구려 수공예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이 중요한 생계수단 가운데 하나다. 미국연방정부는 지난 1860년대부터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기 시작했다. 서부로 이주하는 백인들이 늘어나면서 토착 인디언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자 인디언들의 생활권을 보호구역으로 제한한 것이다. 결국 말이 좋아 보호구역이지 정부가 주도한 ‘인디언 땅 뺏기’였다. 인디언들은 연방정부의 주거지역 제한조치에 맞서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인디언들로서는 굶어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정부군과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다. 결국 처절한 싸움 끝에 패배한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이라는 척박한 생활환경을 감수해야 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이 ‘인디언 멸종구역’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보호구역이라는 발상 자체가 인디언의 희생을 전제로 백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보호는 경쟁력을 떨어뜨려 한국에도 인디언 보호구역 같은 정책이 있다. 바로 이공계 대책이다. ‘이공계 위기론’이 불거지자 정부는 이공계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이공계 대책은 주로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과 이공계 대책은 그 의도는 다를지 몰라도 똑같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보호구역이 인디언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듯 정부의 이공계 대책도 이런 식이라면 이공계 학생, 나아가 이공계 출신들의 자생력을 키우기 어렵다. 정부는 최근 이공계 채용 목표제를 발표했다.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이 앞으로 5년간 이공계 출신 신규 채용인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채용비율을 현재의 55%에서 60%로 늘리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공계 채용확대를 의무화하는 것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완화해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육성하려는 고육지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일단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이공계 인력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조정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공계 위기의 핵심은 ‘수(數)’가 아니라 ‘질(質)’의 문제다. 그저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이공계 교육의 수준을 높여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공계 위기는 질(質)의 문제 최근 경영자총협회가 대졸 신입사원 재교육 현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입사원 1명당 교육비용이 대기업이 1억680만원, 중소기업이 3,919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에서 우수한 인력을 길러냈다면 이런 재교육 비용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국제 경쟁력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이 틈만 나면 이공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구개발 인력 경쟁력에서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죽하면 외국투자기업 부설연구소들이 한국에서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양질의 연구인력 확보문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을 정도다. 이공계 대책을 수립, 집행하면서 더 이상 ‘보호’에 집착할 여유가 없다. 이공계 전공자가 높은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공계 대책은 ‘우수인력 육성’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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