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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천석꾼과 만석꾼의 위기
입력2007-05-17 16:53:17
수정
2007.05.17 16:53:17
[기자의 눈] 천석꾼과 만석꾼의 위기
우승호 derrida@sed.co.kr
옛날 부자는 주로 천석꾼과 만석꾼으로 불렸다. 천석꾼은 1년에 쌀 1,000석을 수확했다. 쌀 한 석은 144kg, 요즘 시세로 치면 30만원가량 된다. 천석꾼은 1년에 3억원, 만석꾼은 30억원가량 버는 부자인 셈이다.
천석꾼ㆍ만석꾼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다. 소작을 주고 그 대가로 쌀을 받았지만 흉년이 들면 대금을 탕감했다. 곳간을 풀고 주린 배를 채워줬다. 그들은 마을의 우상이었다. ‘군(君)’이라는 접미사에는 부자들의 책임과 그들에 대한 존경이 담겼다.
전체 산업에서 은행업은 대표적인 천석꾼과 만석꾼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국내 영업비중이 100%에 가깝고 이익은 전부 국내에서 나온다. 국내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90%를 넘고 사상 최대 순익 행진을 이어가면서 한 분기, 3개월 동안 무려 1조원 안팎의 순익을 챙긴다.
이런 천석꾼ㆍ만석꾼(은행)의 상머슴(은행장)들이 요즘 ‘위기’를 강조한다. 하지만 서민들이 걱정하는 먹고사는 생존의 위기는 결코 아니다. 천석꾼ㆍ만석꾼에게 위기는 쌀 수확량이 계속 늘어나지 않거나, 줄어드는 일이다. 3년에 한번씩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머슴에게도 위기는 마찬가지다.
농사짓는 땅을 넓히는 일이 쌀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국내 영업에만 목을 메는 은행 입장에서 수익을 늘리는 손쉬운 방법은 자산을 확대하는 것이다. 자산확대 성과는 금방 나타나지만 리스크는 서서히 나타난다. 좋은 성적표를 내밀기 위해 자산확대에 나서는 것은 3년에 한번씩 위기를 맞는 은행장에게는 달콤한 독이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16일 은행장들에게 ‘쏠림현상과 과당경쟁 자제’를 당부했다. 정상적인 시장에서의 과당경쟁은 가격 하락과 서비스 개선으로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준다. 그러나 국내 은행끼리 국내 시장에서 과당경쟁을 하는 것은 경제의 불안요인일 뿐이다.
땅 짚고 헤엄치면서 위기라고 말한다면 누구도 그들을 ‘은행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넓은 바다로 나가라.
입력시간 : 2007/05/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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