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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나만의 삶을 위한 집

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집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연은 그때마다 책을 한 권씩 쓰고도 넘칠 정도다. 특히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몇백 년 동안 두터워진 시간의 더께까지 겹쳐져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피어난다.

얼마 전 남산 아래, 오래된 동네에 집을 한 채 완성했다. 두 해 전 여름,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에 속하는 한 가장이 찾아왔다. 자녀들이 성장하는 동안 신도시 등으로 이사 다니며 아파트에 쭉 살아왔다고 했다. 처음의 계획은 아내가 어릴 적 살다가 떠나며 임대 줬던 낡은 단독주택을 고치자는 것이었다. 시장과 전철역이 가깝다는 편리함과 남산이라는 자연이 공존하는, 주거지로서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어진 지 적어도 50년이 넘은 집은 햇빛이 별로 들지 않아 어두웠고 단열도 시원치 않았다. 낡은 부분에 덧대어 증축한 부분들이 또다시 낙후돼 정리하고 구조도 보강해야 하는 복잡한 공사였다. 고민하고 들여다보는 사이에 계절이 지나가고 우여곡절 끝에 그 자리에 집을 새로 짓기로 하고 해를 넘겼다.

보통 집 설계를 할 때는 대부분 부부가 함께 찾아온다. 20대의 젊은 부부든 70대 부부든 이야기의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보통 아내는 집 안에, 남편은 집 바깥, 즉 마당이나 외부공간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 혹 이견이 있으면 결정이 늦어지거나 심지어 집 짓는 일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두 분이 잘 상의해서 꼭 합의하고 오시라"고 권하곤 한다.

그런데 이 집은 남편이 분명한 취향을 갖고 일을 주도했다. 벽돌과 나무로 마감한 내부는 웬만한 카페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공간이 됐다. 예전에 70대의 건축주에게 목재로 된 점잖은 디자인을 권했다가 젊은 사람들도 취향을 타는 노출콘크리트를 원한다 해서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선입견이야말로 좋은 디자인의 가장 큰 적이다.



몇 년 전부터 주택 설계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오는 예비 건축주가 점점 늘고 있다. 아파트에서 살며 평수를 늘려가는 것이 최선의 재테크라고 믿었던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는 것을 부쩍 실감한다. 예전에는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거의 전원주택 혹은 세컨드 하우스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실용적인 주택부터 실험적인 주택까지 계층도 기호도 형태도 무척 다양해졌다.

30대 초반의 어떤 젊은 부부는 용산 한복판에 66㎡가 채 안되는 땅을 구해서 주차장을 포함한 주택 신축이 가능한지 상담을 해왔다. 한 층의 면적을 대지 면적의 60% 이하로 규정하는 건폐율을 적용하면 각 층 면적은 40㎡ 정도가 된다. 일반적인 집을 생각하면 무척 좁다 하겠지만, 3개 층만 쌓아도 웬만한 아파트 정도의 규모가 되면서 마당도 만들고 옥상정원도 꾸밀 수 있으니 오히려 새롭고 신선한 공간이 된다.

오랫동안 우리는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집을 원했다. 정작 '나'라는 존재가 소거됐던 내 집. 나만의 삶을 위한 집, 잊고 있던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집. 그런 집을 꿈꾸는 일이 건축의 본연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그렇게, 사람과 땅이 함께 꾸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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