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사진)현대경제연구원장과의 인터뷰는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이틀 앞둔 지난 17일에 진행됐다. 우리 정부는 물론 세계의 주요 금융시장은 FOMC의 결정에 관심을 두던 터라 인터뷰에서도 '(FOMC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번에는 별것 없을 겁니다." 근거는 이랬다. "아직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단계입니다. 미국 경제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금리를 올리거나 방향성에 운을 뗄 정도는 아닙니다." 고용의 수준도 근거로 댔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고용을 중시합니다. 미국 고용지표가 많이 나아졌지만 실업률이 5.9%예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전의 4.8%보다 낮지요. 고용의 질도 좋아야 하는데 기대만큼은 아닙니다. 금리의 방향을 손대기 힘든 이유지요." 19일 FOMC의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였다. 연준 위원들은 양적완화 축소가 끝난 후에도 상당기간 초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FOMC에 대한 예측처럼 모든 주제에 대한 그의 진단은 거침없었고 막힘이 없었다. 디플레이션 논란을 두고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일축했고 담뱃값, 주민·자동차세 인상은 "증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 경제팀의 정책에 대해서는 "단기처방은 훌륭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려가 많다"고 평가했고 "가계부채는 한번 증가하면 꺾을 수 없는 것"이라는 진단도 내렸다. 취임 반년이 지난 하 원장에게 우리 경제가 부닥친 현실에 대한 분석과 해법을 서울 종로구 현대연구원 원장실에서 들어봤다.
한은 인플레 운운 … 번지수 잘못 찾은 것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말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밝히면서 촉발된 디플레이션 논쟁을 두고 하 원장은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말했다. 현재 물가의 '추세와 속도'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물가가 과연 하락하는 추세냐 올라가는 추세냐가 중요합니다. 떨어진다면 또 얼마나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느냐. 결국 추세와 속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현재는 물가가 하락 추세라고 진단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는 우리 물가상승률이 4%대였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에는 3%로 빠졌고 2012년 2.2%, 지난해 1.3%다. 올 들어 (정부가) 애를 쓰지만 1.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디플레이션 논쟁을 벌이기보다 추세적으로 물가가 낮아지는 것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는 사람으로 치면 체온입니다. 물가가 낮다는 것은 몸의 온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혈액이 잘 돌지 않아요. 문제가 생기겠지요. 경제 역시 저물가가 지속되면 2020년 안에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 원장은 더 나아가 "전세계가 디플레이션 상황인데 한국은행은 아직도 인플레이션을 화두로 잡고 있다. 이는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라며 "디플레이션이랑 싸워야 하는 마당에 물가상승률과 싸우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쓴소리도 했다.
경제팀 단기대응 잘했지만 갈길 멀어
담뱃값 인상, 주민·자동차세 인상을 두고 '복지증세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데 대해 하 원장은 "증세라는 표현을 붙이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담뱃값을 올리는 것을 반드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측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담배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율이 낮아지면 국민의 의료비용도 절감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주민·자동차세 역시 장기간 동결된 것이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 '현실화'에 더 가깝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내년 예산안도 지출을 많이 하겠다는 확장적인 재정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증세라고 하기에는 마땅치 않다"면서 "정부가 4월 소비세를 올려 흔들리는 일본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증세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최경환 경제팀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하 원장은 "단기대응은 훌륭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부문에 있어서는 우려스러운 게 많다.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경제팀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것을 두고 "주택거래의 숨통을 틔워줬다"고 말했다. 재정집행을 늘리고 대대적인 규제 완화 추진, 서비스산업 육성 등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꺼냈다는 게 그의 평가. 문제는 장기처방인데 물음표를 붙였다. 그는 "우리 경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기업의 투자가 부진한 것과 유효수요가 부족한 것"이라며 "두 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는 정책들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데 가시적으로 나오고 있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투자가 식었다.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4월 82를 정점으로 △5월 79 △6월 77 △7월 74 △8월 72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기업이 바라보는 경기전망이 나빠진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고령화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디플레이션의 가장 큰 이유도 인간수명 연장에 따른 고령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본격적인 고령화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며 "노후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고령자에 대한 취업 대책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게 젊은층이므로 출생률을 높여야만 결국 저물가 현상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부채 진정됐는데 가계는 빠르게 늘어
빠르게 불어나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외환위기가 온 것은 기업부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기업부채는 진정이 됐는데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가계부채는 기업부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예요. 한번 올라가면 꺾을 수 있는 방법도 없지요. 기업부채는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을 쓰면 되지만 가계부채는 해결 방법도 복잡하고 잘못되면 사회적 파장도 훨씬 큽니다." 그는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은 7월보다 4조7,000억원 증가했다. 1~7월 평균인 1조5,000억원의 3배가 넘는 수치"라고 말했다. 물론 금융 당국은 LTV·DTI 완화와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주택금융공사의 정책 모기지론 취급이 확대된 탓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설명을 했다. 하 원장은 그러나 "가계부채가 이렇게 계속 증가하면 나중에 금리가 올라갈 때 큰일 나는 것"이라면서 "가계부채 총량은 늘어나고 있고 금리도 올라갈 수밖에 없으므로 당국이 굉장히 우려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은의 기준금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물론 현재의 기준금리는 더 낮출 여지가 충분하다고는 했다.
그는 "0.25%포인트 낮춘다고 해서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며 "현대경제연구원에서 계산해보니 현재의 적정금리가 1.76%라는 결과가 나왔다. 10월이나 11월에 금리가 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운은 뗐다. 그러나 "복병은 가계부채"라며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부채가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가파르면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인하할 시점은 "가계부채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면 0.25%포인트 더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9월 가계부채 통계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과 함께.
원·엔 대응방법 없어 … 대외 변수 주목을
대외경제 이슈에 대해서도 진단을 내놓았다. 최근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는 원·엔 환율과 관련해 "대응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에는 원·엔 시장이 없고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에 따라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방법이 환변동보험 등의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조기 인상설이 불거지고 있지만 내년 2·4분기 이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옐런 의장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고용인데 현재 고용률이 59%로 금융위기 이전인 62%에 못 미치는 등 금리를 내년 상반기에 인상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다만 하 원장은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그는 찰스 달라라 전 국제금융협회(IIF) 소장의 말을 빌려 "(양적완화 상황은) 인류 사상 최초로 우주에 나와 있는 우주인과 같다. 당장은 기분이 좋지만 다시 지구에 안착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역사상 처음 양적완화를 실시한 게 일본이지만 미국만큼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므로 이를 아무 탈 없이 정상화시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 싱싱한 엔진 … 비정치 교류 넓혀야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하 원장은 북한을 "사용하지 않은 싱싱한 성장엔진"이라고 진단했다. 전세계 주요국의 금리가 0%인 상황인데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근면하다는 인상도 남아 있으므로 통일이 되면 막대한 돈이 한반도로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통일 및 북한 개발의 주도권을 외국에 빼앗길 수 있으므로 들어오는 자금을 선별하고 과실을 많이 넘겨주는 않는 선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안보논리가 주도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대북정책이 정권의 바뀜에 따라 너무 큰 폭으로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적·문화적·경제적 교류는 계속 진행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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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치 200개 술술 '컴퓨터 두뇌'… 스케일 커 업무 스타일도 화끈목 ■하원장은 |
/대담=이철균 경제부차장 fusioncj@sed.co.kr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