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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84> 품위 있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또는 불만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직접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는 적극적인 방식부터 관련 기관을 통해 문의하여 민원을 넣는 식의 소극적인 방법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품위 있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이 당연히 가장 권할 만하다. 모양이 빠지지 않게 또는 얼굴 붉힐 일이 없이, 제일 그럴듯한 방법을 쓰는 것 말이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힘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 누군가의 행동을 유도할 만한 권력이 있어야 하는 뜻이다. 여기서 권력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강성 권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연인이 ‘우산이 없어’라고 말했다 치자.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빗길을 뚫고 와서 우산을 씌워줄 수 있다. 달려온 연인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커다란 동기가, 우산을 받은 연인 입장에서는 ‘나는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가치의 프레임이 작동한 것이다. 이 상황에도 엄연히 권력이 작용한다. 일종의 ‘연성 권력’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어른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어른은 한때 최고위의 자리를 거쳤거나 숱한 경험을 가지고 ‘전직’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집단에서 쌓은 실력과 명망, 그리고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금전적인 대가나 사회적인 이득을 취한다. 때로는 인간적인 존경을 위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들어 주기도 한다. ‘저.. 청이 있습니다.’라며 누군가가 청탁을 하는 순간에 이런 종류의 어른들은 인생의 짜릿함, 다시 말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낀다. ‘그래 나는 죽지 않았구나. 열심히 살아 왔구나’라며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로 삼는다.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제일 부담스러운 사람들 중 하나가 ‘전직 어르신’이라고 한다. 상당히 높은 연봉을 받고 어딘가로 갔다고 들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밥먹자’며 약속을 청할 때,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느 부처의 전직 장관이나 차관이라 할지라도 원칙과 철학에 공감할 수 없는 원로라는 느낌이 들면 그와의 동석이 부담스러운 법이다. 가끔 대쪽 같은 담당자들은 ‘무슨 용건이십니까’라며 원칙적인 말을 할 준비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어르신. 잘 지내시죠’라며 서두를 끊고, 당장 ‘밥 약속’을 처리하러 나가야 한다. ‘대체 원하는 게 뭘까’라는 의구심은 저녁 한 상에 반주를 곁들여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눈 녹듯 녹아 내리고 만다. 그리고 어색하게 가득 찬 배를 어루만지며 힘없이 회사로 돌아온다. ‘그래. 먹고 살아야지. 좋은 게 좋은 거지 뭐’라고 자조하면서.



부탁? 청탁? 그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상식을 크게 벗어난 무리한 부탁이나, 직업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청탁은 곤란하다. 그래도 끝끝내 청탁을 고집하려는 ‘어르신’이 있다면 팁을 드리겠다. 일단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측근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를 활용하시라. 그도 여의치 않으면 청탁을 넣되 부탁받은 후배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그 스스로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위안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 청탁을 넣는 식사 자리에서 ‘어이 친구,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냐?’라며 등짝을 후려치며 강짜를 부리는 어르신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하시라. ‘진상 노인네’ 또는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는 악평을 들을 각오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으시다? 그렇다면 무엇을 염려하랴. 누려라. 그러려고 그 높은 자리까지 아등바등 올라갔던 것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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