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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모피아'를 수술하자

김인영 경제부장 inkim@sed.co.kr

[데스크 칼럼] '모피아'를 수술하자 김인영 경제부장 inkim@sed.co.kr 지난해 말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이 은퇴 후 한국돈으로 무려 1,500억원에 상당하는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받기로 계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다. 총대를 멘 사람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국무장관을 역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였다. NYSE 사외이사를 맡고 있던 그녀는 그라소의 퇴진을 주장했고 이에 모건스탠리ㆍ메릴린치 등 굵직한 회원사들이 가세했다. 여론의 등에 밀려 그라소는 퇴진했다. 그가 물러나자 관심은 누구를 차기 회장으로 임명할지 여부에 모아졌다. NYSE는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사 가운데 그라소의 사람들은 줄줄이 물러나고 남은 이사와 사외이사들이 모여 시티그룹 회장을 지냈던 존 리드를 임시 회장으로 영입했다. 얼마 후 NYSE는 대대적인 구조개편을 단행했고 올초에 존 테인을 CEO로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가 감독당국의 개입 없이 증권인 스스로에 의해 최고경영자의 비도덕성을 심판하고 자체 수술을 거쳐 새로운 경영자를 뽑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초대 통합거래소 이사장 선임을 놓고 시끄럽다. 최종후보로 추천된 3명이 동시에 후보직을 철회하고 이 과정에서 '모피아(재정경제부 출신의 금융인)'를 견제하기 위한 청와대 개입설이 흘러나와 관치논란으로 발전하고 있다. 거래소 통합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정부가 여러 거래소를 통합하라든지, 부산으로 가라든지 하며 간섭하는 것 자체가 시장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미국의 시카고 상품시장은 상품거래 비중이 적어지면서 유로 달러시장으로 거래 포지션을 확대하고 뉴욕이 상품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선물시장의 중심이 됐다. 시장이 먼저 변하고 그 후에 거래소 조직과 거래방식이 바뀌는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통합하라, 어디로 가라는 것은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조치는 아니었다. 어쨌든 통합거래소가 법률에 의해 구성된다면 민간인으로 구성된 추천위와 회원사의 총의에 경영진 선임을 맡겨야 한다. 재경부가 처음부터 이사장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통합거래소의 입법취지에도 맞지 않거니와 시장경제를 존중한다는 정부의 원칙과도 배치된다. 재경부는 이사장 후보추천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감독당국은 금융기관의 위법성과 경영진의 비도덕성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데 역할의 한계를 긋고 경영진 선임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피아의 금융권 장악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재경부가 금융기관을 산하기관으로 간주해 옷을 벗은 공무원에게 자리를 만들어줬다면 그것은 한국 금융구조의 낙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정부가 선진 금융권을 지향하고 동북아시아 허브를 구상하면서 모피아니, 이헌재 사단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미국이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인적 시스템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루빈, 로런스 서머스, 폴 오닐, 존 스노 등 역대 재무장관들은 업계ㆍ금융계ㆍ학계 출신이고 40대가 재무부와 FRB 고위간부가 돼도 전혀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일본은 장기불황에 시달리던 90년대 말에 총리를 지냈던 80대의 노정객 미야자와 기이치를 재무장관에 입각시킨 적이 있다. 그만큼 일본 관료조직과 금융구조가 후진적임을 보여줬다. 한국 금융당국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개혁에 성공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금융개혁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그것은 개혁의 칼을 댔던 주체가 칼자루를 내려놓는 것이다. 한국도 경제체질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 금융당국이 스스로 수술대에 올라서야 한다. 입력시간 : 2004-11-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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