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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3월 9일] 영웅이 없는 나라

권태균(조달청장)

파리에 가면 길이 빗살처럼 방사형으로 뻗어 있어 헷갈릴 때가 많다. 잘못해서 옆길로 한 칸만 잘못 들어서도 재수가 없으면 한없이 멀어지는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개선문 광장이다. 12개 길로 갈라지는 이곳에서 차를 몰아 자신이 원하는 골목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곡예에 가깝다. 더구나 파리시내에서는 큰길 우선이 아니고 무조건 나보다 오른쪽길 차가 우선이다. 이런 독특한 교통법칙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많은 이론이 있다. 어쨌든 파리에서 렌터카 여행객들이 안전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교통규칙임에는 분명하다. 파리 교외를 벗어나면 큰길 우선의 정상적인 법칙으로 되돌아간다. 지도를 들고 파리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길거리 이름에 유난히 정치인이 많다. 전직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시장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프랭클린’‘루즈벨트’‘케네디’‘처칠’ 등 외국 정치인의 이름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는 길 이름에 외국 유명 정치인의 이름은 물론이고 국내 역대 대통령이나 총리 이름도 없다. 왜일까. 아마도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이 심하고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과가 나뉘고 찬반이 나뉘는 상황에서 공적인 도로 이름으로 채택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존경 받는 정치인이 많은데 우리는 왜 존경 받는 정치인이 없을까. 도덕성의 차이일까. 아니라고 본다. 그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좋은 점을 보고 평가를 하면 충분히 위인이나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도 나쁜 점을 들춰내기 시작하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소크라테스도 악처에게는 한낮 게으르고 무능한 서생에 불과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본받으라고 할 만한 위인을 찾기가 힘들다. 언제까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만을 가르치며 살 것인가. 다른 나라에서는 지금도 영웅이 계속 탄생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건국 60년 동안 새로 태어난 영웅이 없다. 과거 행적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옥석을 가리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꼭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 시대를 이끌었던 국가수반들 만큼은 나름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한 부분을 높이 사주는 사회적 아량이 있었으면 싶다. 비판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긍정의 힘이 국가발전을 위해 가공할 창조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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