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진행해 오던 국제중재 사건의 변론이 지난달 서울에서 열렸다. 3명의 외국 중재인 앞에서, 김앤장 국제중재 팀은 미국 로펌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심리는 하루 8시간씩 나흘간 계속됐다. 양측 변호사가 진행하는 90분씩의 구술변론을 시작으로 마지막 날까지 7명의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이 진행됐고, 최종변론을 끝으로 2년간에 걸친 중재가 마무리 됐다. 이처럼 국제 중재의 법률시장은 이미 개방됐다. 유수한 중재인들과 국내외 로펌들이 국제중재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동안 국내 기업들의 국제 중재 관련 사건은 세계 9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들의 해외진출이나 국제거래는 이제 일상의 삶이 됐다. 그만큼 분쟁도 잦아지는데 국제 중재는 이미 그 분쟁 해결의 대세를 이룬다. 그렇다면 왜 국제소송이 아니라 국제중재가 대세일까. 기업들은 자기 나라 법원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기업간의 분쟁의 해결방법은 상대방과의 합의에 의해 정해질 수 밖에 없고, 자연 중립적 입장이 보장되는 중재판정부에 의한 국제중재에서 해결을 찾기 마련이다. 늘어나는 국제 중재에 대비해 국내 기업이 유의할 사항을 몇 가지 점검해 봤다. 첫째, 중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중재라는 단어는 “분쟁에 끼어들어 쌍방을 화해시킨다”는 의미로도 종종 사용되기 때문에, 국제중재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중동사태에 미국이 중재에 나선다고 할 때는 타협안을 내어 화해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기업은 중재인이 타협안을 내어 화해를 유도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필요한 조치를 미루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국제 중재의 정확한 의미는 “민사 분쟁을 재판에 의하지 않고 사적 재판기관인 중재인에게 맡겨 그로 하여금 구속력 있는 판정을 내리게 하는 제도”로, 외국인 중재인들 앞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민사소송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둘째, 국제중재는 절차 초반이 중요하다. 중재 신청을 전후한 사건 초반에 철저한 서류 검토와 준비를 해야 한다. 중재 초반에 주장과 증거를 모두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는 일단 절차가 시작되고 나면 주된 주장을 변경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중재는 재판과는 달리 항소가 불가능한 단심제이고, 패소하는 경우에는 승소한 상대방 변호사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해 주는 것이 관례이다. 셋째, 변호사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제중재 절차는 국내 소송과는 달리 생소한 절차에 의해 대부분 외국어로 진행되며 방대한 분량의 사실관계를 토대로 절차들이 신속하게 진행된다. 이러한 생소함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담당 변호사를 지원하고 필요한 의사소통을 하는데, 국내 소송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중재사건 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담당자를 두거나 지원팀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국제중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실관계의 파악이 중요하다. 기업 전체 차원에서 사건 초반에 증거의 수집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중재는 증거 수집에 의해 그려진 사실관계를 토대로 하여 법률판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전제된 사실관계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승소가능성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반면 그 사실관계에 어느 나라 법률이 적용되느냐 하는 점은 결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영국법이 적용되든 한국법이 적용되든, 결론은 동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나라 법이든지 나름대로 상식에 부합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재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사실관계 수집과 변호사와 의사소통을 잘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며, 이는 어느 나라 변호사를 선정할 것인가 하는 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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