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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기자와 대못

어느 기업의 기자실에서 기자 두 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배 기자가 후배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니?” 후배 기자가 선배의 눈을 똑 바로 쳐다 보면서 답했습니다. “네. 아직도 저는 대통령의 비판적 지지자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더니 대화가 끊겼습니다. 아마도 그 젊은 기자는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감정과는 관계 없이 대통령의 정치적 노선이나 이념을 지지하는 듯 했습니다. 그로부터 두 해가 흘렀습니다. 임기를 6개월 남긴 대통령과 언론간의 감정 싸움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얼마 전 원광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기자실에 대못을 박겠다”며 언론에 대한 극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아마도 보수 언론의 공격에 감정이 격해진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지지하는 기자들의 존재를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에 구성원의 성향이 획일적인 조직은 없습니다. 보수 언론사 안에도 진보 성향의 기자는 있고, 진보 성향의 언론사에도 보수적인 기자는 있게 마련입니다. 같은 이치로 여당에도 보수 성향의 의원이 있고, 야당에도 진보 성향의 의원이 있습니다. 이념적 지향이 다른 그들은 조직을 자극하고, 당의 진로를 보정하는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대통령과 언론 사이에 패인 감정의 골을 메울 수 없을 것 같은 지금, 2년 전 두 기자의 대화가 떠오른 것은 그 후배 기자의 신념이 아직도 변치 않았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어느 언론 기관에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기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지금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기자들은 있을 것 입니다. 언론의 효과이론 중에 ‘침묵의 소용돌이’(Spiral of Silence)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소수의 의견을 가진 이들은 다수의 의견과 마주했을 때 다수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두려워 자기의 의견을 숨기게 됩니다. 따라서 소수의 의견은 더욱 약해지고, 다수의 의견은 더욱 강해지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굳이 이 이론을 차용하지 않더라도 작금의 상황을 보면 언론사에서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 성향의 기자들은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고, 그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대통령의 의도야 어찌됐건 언론계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기자들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그들은 대개 언론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들이고, 정의와 사명감에 불타는 젊은 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들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고 믿었던 대통령으로부터 버림 받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들이 감당하고 있을 좌절과 상실감을 대통령은 헤아리고 있을까요. 혹시나 대통령이 기자실의 문에 박겠다고 한 대못이 젊고 순수한 기자들의 가슴에 박혀 버린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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