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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컴퓨터는 퇴근 뒤 취미로 만들었다"

■ 스티브 워즈니악 / 스티브 워즈니악ㆍ지나 스미스 지음, 청림출판 펴냄<br>스티브 워즈니악 자서전서 밝혀<br>"나의 집에서'애플' 첫 제작해 공동창업자 잡스 창고서 테스트"<br>언론에 잘못 알려진 사실 바로잡아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애플 컴퓨터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서전을 통해 역사를 되돌린다. 영업수완과 언론관리 능력이 뛰어난 잡스와 달리 내성적인 성격의 엔지니어 워즈니악은 그 동안 언론에 나서지 않았다. 애플과 관련해 널리 알려진 많은 사실이 실제와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1975년 세계 최초로 입력장치(키보드)와 출력장치(모니터)를 갖추고 태어난 컴퓨터 애플I의 출생지는 워즈니악의 집이라고 한다. 워즈니악은 컴퓨터 클럽모임 '홈브루'의 엔지니어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통해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작고 효율적인 컴퓨터 만들기에 매달렸다. 메모리와 입출력 장치를 추가한 거친 형태의 애플I은 워즈니악의 집에서 완성됐고, 홈브루 정기모임에서 선보였다. 얼마 지나지않아 잡스는 완성된 컴퓨터의 납품 수주를 받아왔다. 대량 판매를 위해 부품을 조립하고 기판의 성능 테스트를 한 장소가 바로 잡스의 차고였다는 게 워즈니악의 설명이다. 1년 동안 잡스와 워즈니악은 애플I을 150대 팔았다. 워즈니악은 컴퓨터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곧 애플II 제작에 들어간다. 그는 색을 구현하고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을 갖춘 컴퓨터 애플 II를 곧 선보인다. 1980년대 100만 대 이상 팔린 히트상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 직업이 없었던 잡스와 달리 워즈니악은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HP의 계산기 제작 엔지니어로 일하며 퇴근 뒤 취미로 컴퓨터를 만들었던 것. 잡스가 25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뒤,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를 공식적으로 출범하고자 했을 때도 워즈니악은 HP에 남고자 했다. 책의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고집 세고 독단적이지만 미래를 보는 안목과 사업수완이 뛰어난 잡스는 타고난 CEO형이다. 반면 세상에 없는 어떤 것을 만드는 게 즐거울 뿐 돈과 직책은 상관없다는 워즈니악은 어쩔 수 없는 엔지니어이다. 워즈니악은 판매와 인적개발 등 관리를 담당해야 하는 CEO가 되는 게 싫었다. 결국 잡스의 부탁을 받은 워즈니악의 친구가 "회사를 창업해도 엔지니어로만 남을 수 있다"고 조언해 애플에 뛰어들게 됐다. 그는 책 말미에 자서전 집필 동기를 밝혔다. 첫 번째 이유는 언론에 의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것. 애플의 탄생과 자신이 애플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두 번째 이유는 그의 독특한 유년기와 맞닿아 있다. 텔레비전 전파방해기를 만들어 기숙사 학생들을 골탕 먹이고, 전화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점에 착안해 공짜 전화가 가능한 블루박스를 만들어 다른 학생들에게 팔기도 했다. 그는 남과 다른 아이, 뭔가를 고안하고 만드는 데서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고정관념에 개의치 마세요. 여러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 낼 겁니다. 1970년대의 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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