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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7월 2일] 장한가(長恨歌)에 몸을 떨다

오영호(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며칠 전 30여명의 무역업체 사장들로 구성된 시장개척단과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동북 3성의 최대 시장인 다롄, 서부 내륙의 시안을 도는 일정이었는데 참여 기업인의 의욕과 중국 바이어들의 진지함이 합쳐져 꽤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시안에 갔을 때다.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한 현지인이 ‘장한가(長恨歌)’ 관람을 권했다. 시안은 단연 진시황릉이 유명하지만 이 공연도 그에 못지않은 여운을 남길 것이라고 했다.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뿌리칠 입장이 아니어서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은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지었다는 호수공원, 화칭츠(華淸池)라는 곳이었다. 막이 오르면서 따분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은 빗나갔고 자리를 뜰 때쯤에는 블록버스터 형식의 기획과 중국 특유의 화려한 무대 연출이 어우러진 훌륭한 문화 상품을 체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한가는 당나라의 대표 문인 백거이가 지은 장편 서사시를 이한충 감독이 연출한 대형 시대극이다. 총애하던 양귀비가 안녹산의 난으로 죽자 실의에 빠져 지내던 현종이 결국 선녀가 된 양귀비와 재회한다는 줄거리인데 화칭츠 내 구룡탕이란 호수에 배치된 갖가지 장치가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해 자신도 모르게 공연에 빠져들게 했다. 양귀비가 목욕할 때는 향긋한 비누 향기가 객석을 채웠고, 두 사람이 호수 한가운데에서 해후할 때는 물밑에 교묘하게 깔아 놓은 장치 덕분에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특히 안녹산이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는 호수 위로 화포가 작렬하기도 했는데 화염의 열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물보라가 객석으로 쏟아져 들어와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무대 장치비로 100억원을 들이고 출연 인원만도 300명이 넘는 이 공연의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최고 20만원이나 하는데도 항상 1,400석의 공연장이 만원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사절단 일정을 마쳤지만 공연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 장한가를 외국인마저 감동하게 하는 훌륭한 문화 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생각에서다. 세계의 상품 공장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이제 ‘세계의 문화 공장’으로 부상하는 현장을 보면서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근육보다는 두뇌와 감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21세기 문화 수출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개척해 나갈 것인가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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