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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정부-서울시-주채권은행 엇박자… 투자도 구조조정도 못해

■ 따로 노는 정책 상징 대한항공 호텔부지<br>정부 공허한 약속 내뱉고 지자체는 무시해버리는 꼴<br>산은은 매각 유도로 혼란 가중<br>재계 투자 독려하려면 신호·액션 동일하게 취해야

대한항공이 경복궁 옆인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주한 미국대사관 숙소 부지에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아 부지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서울경제DB


대한항공이 숙원사업인 서울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건립 프로젝트를 두고 이제는 절망의 상황에 빠졌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홍기택 은행장(산은금융지주 회장)마저 "부지를 매각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홍 회장은 "호텔 부지 허가가 법적으로 안 나게 돼 있다"고까지 했다. 경제사령탑인 기획재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고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주채권은행이 호텔 건립을 '불가'로 결론 내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한항공은 물론 중앙정부까지 억지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홍 회장의 발언은 호텔 건립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서울시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돼 호텔 건립허가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중앙정부는 규제를 개선해서라도 투자하도록 독려하는데 지방정부는 물론 심지어 채권은행과도 엇박자를 내는 상황"이라며 "이러니 투자도, 구조조정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따로 노는 정책의 상징이 된 송현동 호텔 건립=대한항공이 가졌던 희망은 컸다. 사실상 무산 위기를 맞았던 7성급 호텔 건립 프로젝트는 9월25일 정부가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고쳐주겠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더욱이 이날 회의는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를 했다. 대한항공으로서는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호텔 건립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맞춰 기획재정부는 "학습환경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해성이 없는 관광호텔이 원활히 건립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제와 절차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규제 개선의 구체적인 일정도 세웠다. 올해 말까지 학교정화위원회 운영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학교 인근에 관광호텔을 지으려면 관할 교육청 소속 학교정화위의 승인이 필요한데 심의 기준과 사업자 진술 기회가 없고 가부만 통보해왔던 현행 심의 방식을 ▦사업자에 설명 기회 부여 ▦승인ㆍ불승인 사유 통지 등으로 바꾸기로도 했다.

서울시가 중앙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반기를 든 것은 일주일 뒤인 10월1일. 서울시는 "종로구 송현동 일대 부지는 도심 명소와 연계되는 상징성을 지닌 북촌의 거점공간이다. 해당 부지를 공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정부가 호텔 건립의 물꼬를 터주려 하지만 결정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가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희망이 우려로 바뀌는 순간이었지만 대한항공은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려 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의를 통해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1일 국정감사에서 홍 회장의 돌발발언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홍 회장은 "호텔 부지 허가가 법적으로 안 나게 돼 있다"면서 "(재무상황의 개선을 위해)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경복궁 옆 부지를 매각하도록 독려해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호텔 건립 허용을 안 해주는 것도 모자라 채권은행이 재무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아예 팔도록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재무상황이나 관련 법 등을 감안할 때 프로젝트 추진이 불가능한데도 정부는 물론 해당 기업이 무턱대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돼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심 잃고 남발하는 엇박자 신호…부양도 구조조정도 안 돼=부양을 위해 중앙정부는 끊임없이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지난달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0대 그룹 사장단을 만나 연초 계획했던 155조원의 투자 이행을 압박했다. 하지만 재계는 "기업의 투자 이행을 압박하기 전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 마련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외치지만 실상은 노동이나 환경ㆍ입지 규제 등 되레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규제 완화를 하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발표만 있지 제대로 된 성과는 없는 게 사실 아니냐"면서 "정부는 공허한 약속만 내뱉고 지자체는 이를 무시해버리는 꼴"이라고 했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처럼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재계에 확실한 신호를 줘야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면서 "신호와 액션이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은행마저 구조조정 과정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특히 STX와 동양 등 기업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지만 채권은행의 맏형인 산은이 과거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는다고 다른 은행들이 불만을 터뜨린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과거 금호아시아나 구조조정 때는 산은이 적극적으로 나서 채권은행별 분담액을 정하고 속도를 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대한항공의 송현동 호텔 프로젝트의 사례처럼 월권발언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넘지 말아야 선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발언이 있는데 너무 고민 없이 쉽게 나오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제대로 된 구조조정은 물 건너간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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