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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휴대폰소음은 범죄?

李在權(산업부 차장)지난 1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 위험수위를 넘은 통신공해의 실태를 짚고, 건전 통신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안을 찾는 대토론회가 열린 자리다. 「통신문화」라는 주제로는 정부·시민단체·학계·언론계·업계가 처음 모였다는데서 의미가 결코 적지 않았다. 주제가 그런지라 사회자는 토론에 앞서 경고에 가까운 주의를 반복했다. (제발)휴대폰과 삐삐를 꺼달라고. 그러나 어김없었다. 「라라리라…」 한시간도 채 안돼 앞자리에서 묘한 멜로디로 휴대폰이 노래했다. 순간 장내는 필름 끊긴 변두리 극장처럼 모든 것이 정지했다. 패널리스트의 말을 좇던 300여 청중의 대뇌활동은 무조건 반사적으로 모두 정지했다. 심각한 서사극이 돌연 코미디로 희화화해 버린 순간이다. 휴대폰에 고달프기에는 토론시간 3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체념할 수 밖에 없을까. 「글로벌 스탠더드」가 생각났다. 이 자리가 진짜 국제회의장이라면, 한국대표의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폰이 회의중에 울렸다면, 회의 뒤 한국대표가 외국 대기업과 빅딜을 벌여야 할 예정이라면, 그 빅딜은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신에티켓에 관해서라면 그 한국대표는 「코리언 스탠더드」의 악명을 유감없이 세계 만방에 과시한 셈이 된다. 한 패널리스트는 『휴대폰소음은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휴대폰 이용집단은 이제 우리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얼마 전만 해도 조용한 자리의 휴대폰소리는 「무례」로 통했다. 하지만 휴대폰인구가 1,300만명을 넘어버린 지금, 웬만한 모임에선 휴대폰 가진 사람이 없는이 보다 훨씬 많다. 자연히 의식의 변화가 생긴다. 「남의 것도 울릴 수 있지만, 내 휴대폰도 울릴 수 있다」는 일종의 공범(?)의식이다. 과거 「몰상식」으로 통했던 무례가 다중(多衆)의 위력으로 상식화되는 가치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휴대폰소음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휴대폰 벨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예기치 않은 가운데 갑자기 터진다는 점이다. 언제 휴대폰이 울릴지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휴대폰 벨은 불규칙적, 불연속적인 경보(ALERT)와 같다. 휴대폰 벨이 울리면 사람의 교감신경은 동물적으로 반응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대뇌의 인식·판단·추론활동은 완전히 정지한다. 그로 인한 피해는 의외로 크다. 예컨대, 연구원이 연구에 한창 몰두해 있는 가운데 휴대폰이 울린다면, 연구의 실마리를 놓쳐버릴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수백명은 한 사람의 휴대폰 소리에 독서와 공부를 방해받아야 한다. 상담중 울린 휴대폰으로 잃어버린 시간은 「돈」이다. 1,300만개의 휴대폰이 4,500여만명에게 끼칠 수 있는 현실적, 잠재적 기회손실을 총량으로 따지면 모르긴 해도 한해 수천억원에 달할지도 모른다. 통신예절, 통신문화는 통신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내 전화 내가 받는데…」라고 하는 「난데族」의 도덕적 해이감은 전화걸 때 외에도 얼마든지 또 다른 폭력과 손실을 낳을 수 있다. 이제 염치도, 시도때도 잃어버린 휴대폰에 성난 얼굴로 경보를 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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