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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8.외판을 서점영업으로 돌리고

영업부장이 된 후에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지방소재 지사의 영업실태는 물론, 서울 본사에 근무하는 50여 명의 외판ㆍ수금사원의 관리, 배본관리 등 잠시도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외판사원 중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나이가 들어 정년 퇴직한 사람,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하기 전까지 임시로 다니는 사람, 사법처리를 받아 전과기록이 있는 사람, 신분을 속이기 위해 건성으로 온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로도 싸움이 잦고,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책을 가져가 팔아먹거나 수당을 미리 달라고 공갈 협박하는 사람 등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어느 날은 한밤중에 부산지사장이 집으로 찾아왔다. 외판 사원들과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어 주먹질을 했는데 헌병대 출신이 주동이 되어 대여섯 명이 보상을 요구하며 사무실을 점거하고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길로 부산으로 내려가 “당장 사무실에서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겠다”며 강경하게 대했다. 결국 그날로 치료비만 주고 해결했다. 매일같이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외판에 대해 점점 회의가 들었다. 당시 출판시장은 몇몇 회사를 제외하고는 서점영업만으로는 현상유지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서점영업이 외판보다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서점영업을 하면 고정 인건비는 물론 임대료를 줄일 수 있고, 사고율도 줄어 실질적인 수익은 더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 서점영업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한 다음 사장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장은 처음에는 생각해 보자더니 한 달쯤 지나 결론을 내렸다. 그 후 전집을 해체해 단행본 그림책 20여 권을 만들고 서울과 지방의 서점으로 책을 보냈다. 서점영업을 하면서부터는 거의 매월 일정기간 지방 출장을 다니게 됐다. 일주일에 20여 개 지역 77~80여 개 서점을 돌자면 발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특히 버스시간을 맞추느라 제대로 식사하기가 힘들었다. 점심은 대부분 카스텔라 빵 한 개에 사이다 한 병으로 버스 안에서 해결했다. 당시 지방 도로는 거의 비포장이었다.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서점이 있는 시와 읍을 찾아 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일에 대해, 인생의 앞날에 대해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때가 출장길 흔들리는 차 안에서였다. 장거리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옆자리 사람과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게 된다. 어떤 때는 목적지에 다다를 쯤에는 10년 지기나 된 듯 이것도 인연이니 대포 한잔 하자며 붙잡는 인정어린 사람도 있었다. 한 번은 진주에서 밀양으로 가는데 예쁜 여성과 나란히 앉게 됐다. 유쾌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밀양에 닿았다. 그 여성은 밀양의 명소를 안내하겠다며 영남루 구경도 시켜주고 아랑의 전설도 들려 주었다. 그 뒤 서울에 돌아와 그 여성이 읽고 싶다고 말했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구해 보내 주었더니 우편환으로 책값을 보내왔다. 친절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을 뿐인데 그녀의 깔끔한 매너가 화사한 모습과 함께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한 달의 4분의 1은 그렇게 지방을 돌았고 나머지는 서울에서 서점의 문턱을 넘나들며 단행본 시장 분위기와 영업방법을 터득해 갔다. 당시 가지고 다니던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외판 시절과 외판관리 하던 노력으로 해 보자. 서점에 도움이 되는 일, 서점에 필요한 일, 서점이 원하는 일부터 하자.` 출판사가 잘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서점이 잘돼야 하고 서점이 잘되면 출판사는 잘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가 생각한 출판영업의 기본이었다. <아시아태평양출판문화협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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