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19일 월가에 비상이 걸렸다. 증권업계와 자금거래가 많은 식용유회사 하나가 파산했기 때문이다. 증권사 두 곳의 거래가 중단된 사실이 알려진 21일 다우존스공업평균지수는 1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콩기름 스캔들의 서막이다. 사건의 핵심은 앤소니 드 앤절리스(Anthony De Angelisㆍ당시 48세). 국제적인 식품상인이자 콩기름과 면화ㆍ종이 등에 투자해 차익을 얻어가는 투기꾼이었다. 싹쓸이식 매매로 한때 미국산 콩 수출의 75%를 차지했던 그가 대규모 투기에 나선 것은 1960년. 소련의 옥수수와 해바라기 농사의 흉작으로 식물성 기름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예상, 닥치는 대로 물량을 사들였다. 대형 저장고도 수없이 지었다. 예상과 달리 공급이 줄지 않아도 장기적인 가격 상승을 확신한 그는 콩기름을 더 사들이고 저장고를 증설하기 위해 보유한 콩기름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마침 스페인에 불량 콩을 수출했다는 구설로 자금사정이 나빠지자 입고증으로 대출받은 뒤로 콩기름은 실수요자에게 팔아버렸다. 사기행각은 입고증을 사들여 제3자에게 다시 넘기던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재고 조사에서 들통났다. 탱크에 콩기름 대신 물만 가득 찼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앤절리스의 파산은 물론 투자했던 증권사들도 위기를 맞았다. 정치인 연루설까지 이어지던 스캔들은 하루 아침에 가라앉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22일) 소식에 묻힌 채 증권사 한 곳의 파산으로 결말났다. 피해액 1억7,500만달러(요즘 가치 13억달러)의 대부분은 개미들이 뒤집어썼다. 예외도 있다. 명성을 막 날리기 시작하던 워렌 버핏은 스캔들로 반토막 난 아멕스의 주식을 있는 대로 사모았다. 결과는 수익률 600%. 절망의 순간에서도 돈 버는 사람은 정말 따로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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