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탄데르은행은 언어 등 문화적 동질감을 토대로 중남미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모델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정작 산탄데르가 인정을 받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강력한 리스크관리시스템이다. 산탄데르는 리스크관리 부서가 주요 사업의 수행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사회 산하에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사외이사로만 구성해 1년에 100차례 이상 회의를 하면서 리스크를 실시간 관리한다. 우리의 은행은 어떤가. 많은 변화를 했지만 상당수 국내 은행은 '무늬만 리스크관리'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부실이 직격탄을 날렸던 지난 2008년 말. 코스피지수가 곤두박질치고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갔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은행산업을 믿었다. 수만명이 잘려나가고 천문학적인 혈세를 들여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신이었다. 다시 찾아온 위기에 우리 은행들은 힘 한번 쓰지 못했다.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보면 가장 높았던 신한이 11.9%에 불과했다. 은행들은 달러를 구하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시중은행 외환담당자는 "하루짜리(오버나이트) 외화대출시장에서 금리가 10% 이상 치솟았지만 빌리기만 하면 칭찬을 받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우리 은행의 기본체력은 이렇게 낱낱이 드러났다. 오죽하면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입에서 "은행을 절대 믿지 말라. 나도 은행에 세번이나 속았다"는 말이 나왔을까. 국책연구기관의 한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산업의 '기본체력'을 리빌딩(재구축)하지 않고서는 성장의 틀을 짠다는 목표가 허구"라며 "은행의 체질에 대한 제대로 된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부족한 리스크관리=국내 은행의 리스크관리능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건전성뿐 아니라 지배구조와 사외이사의 외부 견제능력마저 문제점으로 드러나면서 리스크관리능력에 의문이 불거졌다. 은행의 리스크관리는 올 들어서도 핫이슈다. 실제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과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은 이미 부실화 비중이 높다. 올 2ㆍ4분기 중소기업 대출과 PF 부실비율은 각각 2.71%, 12.80%로 어느 때보다 높다. 중소기업 대출 부실채권비율은 2007년 0.99%에서 지난해 이후 2%를 넘어섰고 PF 대출 부실채권비율도 지난해 4ㆍ4분기부터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규제가 강화되고 세계경기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어 향후 국내은행의 경영환경이 낙관적이지 않다"며 "은행들이 올 하반기에는 수익 증대보다 리스크관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바젤Ⅲ 대비해 유동성 강화해야=국내 은행의 글로벌화 수준은 경제 규모 세계 13위에 맞지 않게 크게 떨어진다. 해외점포 수, 외국인 인력, 해외실적비중 등 모든 부문에서 세계적인 은행들과 큰 차이가 난다. 다행인 것은 건전성 측면에서는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점. 6월 말 현재 국내 18개 은행의 BIS비율은 14.36%로 세계 대형 은행들과 큰 차이가 없다. 자본금과 자본잉여금 등 핵심자본만 포함한 기본자본(Tier1)비율도 11.59%로 글로벌 우량은행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오는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바젤Ⅲ 기준에는 모자라는 부분이 많다. 바젤Ⅲ는 ▦자본규제 강화 ▦레버리지비율 규제 도입 ▦유동성 규제기준 도입 등에 따라 고위험ㆍ고수익을 목표로 하는 영업 모델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이 시급히 준비할 부분은 유동성비율이다. 유동성이 급격히 나빠져도 30일 동안 버틸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단기유동성비율(LCR)의 경우 국제기준은 최소 100%인 데 반해 국내 대형 은행은 76%, 농협ㆍ부산ㆍ대구은행은 75%로 25~26%포인트 낮다. 중장기유동성비율(NSFR)도 대형 은행이 93%, 농협ㆍ부산ㆍ대구은행은 99%로 국제기준 100%에 1~7%포인트 미달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바젤Ⅲ 도입을 앞두고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이 은행들의 유동성"이라고 지적했다. ◇포트폴리오 다변화해야=또 하나 중요한 부분이 사업포트폴리오 확대다. 시중은행은 물론 올 들어 부산 등 지방은행도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지주사로의 전환은 증권ㆍ보험ㆍ자산운용 등 다양한 금융사업을 포트폴리오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은행들도 이를 노려 2000년대 초반부터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리며 지주사로 전환해왔다. 하지만 기대했던 사업다각화 효과는 미미하다. 올 상반기 4대 금융지주는 하나금융을 제외하고 3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비은행비중은 신한(30.7%)을 제외하면 KB(7.9%)ㆍ우리(10%)ㆍ하나(12%) 등이 모두 10%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 KB를 제외한 다른 곳의 비은행이익비중은 지난해보다 줄었다. '이자 따먹기'를 통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고 있을 뿐 사업다각화를 통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던 비이자수익은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전직 금융위원장의 표현처럼 '지주회사'가 왜 필요한지 의문일 정도로 포트폴리오가 편중돼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다각화하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인력 영입, 시스템 투자 확대 등 실질적인 노력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며 "그동안 예대마진 속에 숨어 '편안한 영업'을 해왔지만 이제는 증권ㆍ보험ㆍ자산운용ㆍ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검승부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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