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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기업 맘껏 뛰게 하라] <1> 관치 고리 끊어야

툭하면 투자해라 값 내려라… 무분별 압박에 길잃은 자율경영<br>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서 60년대 낡은 유산 못버려<br>사업영역·하도급까지 통제 규제 줄이고 투명화 시급

4월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에 참석한 사장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윤상직(오른쪽) 장관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동호기자


이달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는 이른 아침부터 삼성ㆍ현대차ㆍSKㆍLG 등 30대 그룹 사장들이 바쁜 발걸음으로 모여들었다. 표정은 한나같이 굳어 있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30대 그룹 사장단 간담회의 행사 직전 광경이 이랬다.

정부 주도로 한자리에 모인 30대 그룹 사장단은 이날 지난해보다 7.7% 늘어난 149조원의 올해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기업들은 올해 세계경제 침체와 새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등을 감안할 때 투자를 크게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날만큼은 정부에 투자확대를 약속해야만 했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기업에 투자 및 고용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올해 보수적인 투자계획을 내놓기가 솔직히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정부가 30대 기업 사장을 반자발적으로 소집해 대기업 투자ㆍ고용계획을 발표하는 행사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연간 투자ㆍ고용계획을 정부가 취합해 공개하는 전형적인 '관치(官治)'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관치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대표되는 정부주도형 경제정책을 통해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도약했다. 당시에는 정부 및 관료ㆍ정치인의 경제행위 제약ㆍ개입이 정당화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고 경제 시스템이 복잡ㆍ다양화하면서 관치는 효용성을 잃은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정부와 정치인들은 시장과 기업경영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관치의 낡은 유산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법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근거를 두는 게 관치경제"라며 "미국 등 선진국은 높은 수준의 관치를 허용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헌법 119조2항(경제민주화 조항)을 근거로 법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려는 관치가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권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물가통제=관치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분야는 물가통제다. 식품기업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최근 빵ㆍ우유 등 식품업체들은 잇달아 가격인상을 철회하거나 유보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물가안정을 강조하는데다 농림수산식품부와 기획재정부 등이 식품업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물가안정에 대한 협조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앞서 식품업계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과자ㆍ음료수ㆍ주류ㆍ가공식품 등의 가격을 잇따라 올린 바 있다. 전 정권의 압박과 통제로 억눌렸던 물가가 정권공백기를 틈타 줄줄이 오르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MB물가'는 이 같은 관치물가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는 쌀ㆍ밀가루ㆍ라면ㆍ소주ㆍ화장지 등 52개 품목을 대상으로 MB물가지수를 만들어 집중 관리했다. 하지만 MB물가의 5년간 상승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6배에 달했다.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어 물가를 찍어 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업영역ㆍ하도급 등도 정부가 일일이 통제=정부는 기업의 가격결정뿐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영역과 하도급 계약, 계열사 간 거래 등도 일일이 통제하고 있다. 우선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를 통해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사업 분야를 인위적으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특정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며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사업철수나 확장자제를 권고 받고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반면 제도에 따른 이익이 이미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일부 중소기업과 외국 기업에 돌아가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부작용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하도급 거래도 관치에 따른 피해가 우려되는 분야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와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협상권을 위임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관련,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하도급은 당사자 간의 거래계약인데 이를 법으로 정하면 시장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기업이 해외 업체에 하청을 주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공정거래법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순환출자 금지, 기업의 계열사 간 거래 규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등도 대표적 관치 사례로 꼽힌다.

◇정부 개입 줄여 경제활력 높여야=전문가들은 관치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가 큰 만큼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키워 경제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선진국에도 관치가 일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내놓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관치를 없애려면 기본적으로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기업 규제를 제도화ㆍ투명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관치경제는 결국 큰 정부를 의미한다"면서 "최근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대변되는 '대처리즘'을 통해 영국경제를 회생시킨 사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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