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과 '살인의 추억'을 보고 영화화를 허락했습니다. 지난 1980년대도 제의가 있었지만 1권의 원작자 자크 로브가 거절했어요. 당시 기술로는 충분히 내용을 표현하기 어려웠을 테고, 덕분에 봉 감독 같은 대단한 감독을 만났으니 오히려 잘됐습니다. 그가 영화 제작현장에서 철저히 지휘하고 계산해내는 것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15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만화 '설국열차'의 원작자 쟝마르크 로셰트(그림)와 뱅자맹 르그랑(시나리오)은 영화의 성공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특히 로셰트는 "한국에 와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영화의 큰 성공에 힘입어 원작만화까지 많이 읽히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내 창작물이 재해석ㆍ표현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원작자로서의 큰 기쁨이자 다른 창작의 원천이 된다"고 말했다.
영화 '설국열차'는 다시 찾아온 빙하기에 인류의 마지막 생존지역인 열차 안에서 가장 하층민인 꼬리칸 사람들의 반란을 그린 작품이다. 현재 개봉 15일만에 국내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시간적 배경을 2030년대로 잡고도 굳이 기차를 등장시킨 이유가 뭘까. 뱅자멩은 "하나의 시스템이 어딘가를 향해 굴러간다는 것에 대한 상징을 부여하고 싶었다. 기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불행하고 작품 전반적인 분위기가 암울한 것은 아무래도 자크 로브가 젊은 작가를 잃으며 이를 비관한 탓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작 만화는 1970년대부터 자크 로브(시나리오)와 알렉시스(그림)의 구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시스가 겨우 4 페이지 그리고 별세했고, 이에 로셰트를 영입해 1984년 1권이 출간됐지만 이번에는 1990년 자크 로브가 세상을 떠난다. 장시간 중단 됐던 프로젝트는 로셰트가 르그랑을 영입해 2권(1999년)ㆍ3권(2000년)을 잇달아 내놓았다.
영화와 만화는 ▦흰 눈 속을 헤치며 달려가는 열차 ▦철저한 계급사회 ▦주인공이 혁명의 리더라는 점 등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결말에서는 영화가 다소 낙관적으로 마무리되며 원작과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르그랑은 "1권에서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죽은 상태로 끝나, 2~3권에서 다른 돌파구를 찾기가 힘들었다. 원래는 4~5권까지 기획했던 상황이라 이후 희망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 걸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구상했다. 어찌 보면 조금 덜 다듬어진 작품이라 비관적으로 비쳤을 수도 있지만, 난 비관론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만화 원작 1권과 2~3권의 그림 스타일이 다르다는 지적에는 "갓 데뷔한 25살 때 1권을 그렸고 이후 20여년간 만화나 동화책 그림을 그리며 조금씩 그림 스타일이 변했다. 개인적으로 동양미술, 특히 중국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 자유럽게 물이나 선이 흐르는 느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로셰트가 대답했다.
이번 영화에서 로셰트는 등장인물인 화가의 손 연기 및 그림 제작을 맡았고, 르그랑도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30여명의 스텝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말이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로셰트)"면서도 "큰 수염을 붙이고 모래ㆍ먼지를 뒤집어 쓴 채 일하며 (우리가) 러시아 사람 같다며 웃곤 했다(르그랑)"고 설명했다.
간담회를 마치며 르그랑은 "프랑스에서 박찬욱ㆍ봉준호를 비롯한 젊은 감독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매년 칸느 영화제의 주요 후보로 선정되는 것을 보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느꼈다"며 "만화도 프랑스에 더 많이 소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설국열차의 다음 권을 생각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