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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 (78) 예림 경기식물원(하)
입력2003-10-12 00:00:00
수정
2003.10.12 00:00:00
옛 사람들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라고 가르쳤다.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싶었던지 근대 이후 상당기간 온고(溫故)는 버리고 지신(知新)만이 최고의 덕목인 양 새로운 것에만 매달렸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을 `엽전`이라고 스스로 비하한 적도 있었다.
엽전이란 무엇인가? 현대식 화폐제도가 실시되면서 쓸모 없이 버려진 전근대적인 화폐이다. 아마 한국인 스스로 자신을 쓸모없는 엽전처럼 여겼던 신세한탄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고 우리의 생활이 많이 윤택해지면서 쓸모없어 내버렸던 엽전이 귀한 존재가 되어 지금은 통용되는 화폐 가치를 훨씬 능가하게 됐다. 덩달아 쓸모없던 옛 생활용품이나 도구들도 민속자료, 또는 민속공예품이라는 전통적인 문화의 산물이 되어 대접을 받기도 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옛 물건들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우리 조상의 손때 묻은 생활도구들이 함부로 버려져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물건의 대부분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또는 마을 사람들이 요긴하게 사용하던 생활 용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문 수집가들처럼 사방을 수소문해서 찾아 나선 적은 없다. 여행이나 지방 출장, 또는 고향 마을에 들렀다가 버려지는 것이 있으면 하나 둘 집어다 모아 놓았을 뿐이다.
그런 물건을 모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나 목적도 없었다. 그러기에 가까이 지내는 친지들도 내게 그런 취미가 있다는 것을 거의 아는 이가 없었다. 20년 가까이 그렇게 모으다 보니까 가짓수도 많아져서 처치 곤란이 됐다. 그러다가 2년 전 예림 경기식물원을 본격적으로 조성하면서 모아 놓은 것들을 식물원에 장식물로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차츰 마음이 바뀌어서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러나 내가 두서없이 모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식물원 조성공사를 하는 틈틈이 소문을 내고 본격 수집에 나서서 지금은 약 6,000여 점을 확보하게 됐다. 이 정도라면 민속전시관 정도는 차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 세세한 분류는 못하고 있지만 모아 놓은 것을 대충 분류하면
▲농기구와 보조 도구
▲일상생활 용구
▲주방용구
▲문방구류
▲대장간 도구
▲방짜 제품
▲볏짚, 삼을 이용한 공예품
▲목제품 및 목공예품
▲각종 옹기류 등이다.
예림 경기식물원이 우리 산하에서 자라는 자생 초화류를 보전하고 증식하여 이 땅에 길이 남기는 작업이라면 이곳에 민속박물관을 만들어 민속 용품들을 전시하는 작업 역시 우리 민족 고유의 삶과 문화적 형태를 보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유익하고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와 함께 만들어지는 문화전시관은 아동도서 전문출판사인 예림당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친필이며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였던 소파 방정환 선생의 유품,이미 고인이 된 아동문학가의 저서와 유품들, 현존하는 아동문학가들의 저서와 친필 원고, 기념물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아동문학 발전의 단계적 추이를 살펴보는 학습적 효과와 함께 우리 나라 아동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이사장ㆍ전(前)대한출판문화협회장
<나춘호 예림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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