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나리오를 보면 아직도 많이 설레요. 손에 땀이 쫙 나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그래요. 하지만 그런 시나리오가 많지는 않아요(웃음)."
19일 개봉하는 영화 '내부자들'은 아마도 이병헌(45·사진)의 손에 땀을 내게 한 시나리오지 않았을까. 1991년에 데뷔, 24년간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켜 온 배우는 영화와 연기를 설명하는 내내 기분 좋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서 정치인과 재벌의 지저분한 일 처리를 도맡아 하다 잠깐의 실수로 팔까지 잘린 채 내팽개쳐지자 복수를 다짐하는 정치깡패 안상구로 분했다. 오른손에 의수를 단 채 왼손만으로 라면을 먹는다거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욕설을 내뱉는 등 이병헌의 낯선 모습들이 영화 속 가득하다.
하지만 그가 처음 탐낸 역할은 안상구가 아니라 유력 신문사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였다고 한다. 이병헌은 "배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달라질 수 있는 캐릭터가 '이강희'"라며 "개인적으로 이미 완벽하게 만들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역할에 좀 더 끌린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안상구 또한 이병헌이 연기를 하며 많이 달라졌다. 원래 무겁고 진중했던 인물이었는데 살벌한 가운데 허당 끼도 있는 캐릭터로 탈바꿈했다. 갑자기 시나리오와 대사 모두를 바꿀 순 없으니 중간중간 즉흥 연기가 많이 삽입될 수밖에 없었단다. "통유리에 안이 다 비치는 모텔 화장실에서 일(?)을 보며 우장훈 검사와 얘기를 나누는 씬이 있는데 그 아이디어는 제가 냈어요. 사실 상반신만 비치는 걸 생각했는데 전신 노출(?)이 될 줄이야(웃음). 정말 제 작품 중 이렇게 아이디어를 내고 애드립을 많이 친 영화가 없었죠."
이토록 노력했기에 잘려나갈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이 배우는 더욱 아쉽다. '내부자들'은 첫 편집본이 3시간 40분에 달해 무수히 많은 씬을 버린 후에야 2시간짜리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다.
"오죽 아쉬웠으면 첫 시사회를 하고 감독님과 배우, 제작진들이 모여 얘기를 했는데 캐릭터별 버전으로 재편집하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실제로 그렇게 할 경우 우리 영화는 아예 구조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꽤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저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나네요."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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