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희곡으로 오늘의 우리를 들여다보는 국립극단의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기획이 올해 주제로 ‘도전’을 내걸고 국물있사옵니다·혈맥·산허구리를 차례로 무대에 올린다. 2014년 자기응시, 2015년 해방과 구속에 이은 올해 주제는 ‘진정한 자기 성찰을 통해 해방된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도전’이라는 의미로, 이전 기획들의 연장선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국물있사옵니다(4월 6~24일 백성희장민호극장)
도전의 첫 삽은 연극 ‘국물있사옵니다’가 뜬다. 1966년 초연된 이근삼(1929~2003)의 대표작으로, 상식대로 살고자 했던 평범한 샐러리맨이 ‘새 상식’을 탑재하고 세속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1960년대 후반 산업화 사회의 세태를 꼬집는다. 이번 시리즈 중 유일한 희곡이다. 소극장 연극을 중심으로 재기발랄한 작품을 선보여 온 서충식이 연출을 맡았다. 서 연출은 “50년 전 작품이지만,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며 “볼 때는 즐겁게, 그러나 극장을 나설 땐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블랙코미디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연출은 이 대사를 최고로 꼽았다. “저 자리가 싫어서 이쪽 자리로 옮겼는데 아직도 나는 그대로인 것 같다.”
◇혈맥(4월 20일~5월 15일 명동예술극장)
다음 무대를 꾸밀 주인공은 김영수(1911~1977)의 1947년 작 혈맥이다. 1947년 성북동 방공호를 배경으로 이곳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혈맥은 광복 직후 빈곤층의 비극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윤광진은 희곡상의 지문을 해설자의 대사로 만들어 극 중 극 형태로 가져갈 계획이다. 윤 연출은 “지금은 사라진 내 어린 시절의 기억과 동네, 이웃, 사람들을 찾아가는 작업”이라며 “모든 것을 배제하고 관객에게 ‘과거’라는 순수한 연극적 순간을 새롭게 성찰할 시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전했다. “내가 기다려온 작품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는 윤 연출은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이 대사(희곡에서는 지문)를 꼽았다. “1947년 이른 여름 서울 성북동 근방, 산비탈 아래에서 사흘 동안에 일어난 이야기다.”
◇산허구리(10월 8~30일 백성희장민호극장)
대미는 함세덕(1915∼1950)의 1936년 등단작 산허구리가 장식한다. 산허구리가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를 한국적으로 풀어낸 산허구리는 자식을 바다에 잃은 어머니의 비극을 통해 일제강점기 서민들의 가난하고 신산한 삶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한국 초연작인 데다 개인적으로도 학교 다닐 때 이후 리얼리즘 연극을 오랜만에 한다”며 “이 작품으로 보여주려 했던 젊은 날(21세) 함세덕의 마음과 태도가 진중하고 좋았다”고 말한다. 고 연출은 별다른 각색 없이 “희곡에 쓰인 그대로 (무대에)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그에겐 이 대사가 와 닿았다. “누나야 어머니는 한세상 정말 헛사셨다. 왜 우리는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한다든. 왜 그런지 나는 생각해 볼테야.”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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