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에서 재량지출 10% 구조조정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경기 불확실성으로 세입 여건이 좋지 않은데 복지수요 증가로 써야 하는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세는 절대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경기회복으로 늘어나는 세입이 많지 않다면 기존 세출을 줄이는 ‘허리띠 졸라매기’밖에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다. 국세 수입은 지난해 담뱃값 인상과 부동산 거래 활성화 덕분에 예상보다 2조2,000억원 더 걷혀 세수 결손을 면했지만 올해는 어떻게 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29일 “예산 규모를 줄인다기보다는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차원”이라며 긴축 예산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각 부처가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요구할 때 기존 지출을 줄여 지원하는 방식으로 재정 운용을 보수적으로 하겠다는 얘기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10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재량지출 10% 감축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그만큼 재정운용의 효율화가 시급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금·보험 등 의무지출의 증가세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만큼 줄일 수 있는 부분에서 줄여 필요한 부분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게 이번 정부 예산편성 지침의 근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밝힌 재정 효율화 원칙이 실제로 얼마만큼 이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량지출 10% 감축이 매년 예산안 편성 지침에 명문화됐던 이명박 정부 때도 실제 이행률은 1~2%에 그쳤다. 정부가 이번에도 내놓은 ‘번 만큼 쓴다’는 재정준칙(페이고·Pay-go)는 국회의 벽에 부딪혀 몇 년째 계류 중이다.
정부는 재량 지출 10% 감축 외에도 재정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선심성 복지사업을 벌이거나 누리 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에 재정적 불이익을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선심성 복지사업의 예로 청년 구직자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청년 수당’을 꼽았다. 매년 예산 집행 여부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의 의무경비 편성 이행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은 의무경비로 지정만 돼 있고 이행장치는 없다”며 “논란이 많아 앞으로 이행할 수 있는 장치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각종 보조금 사업에 대한 고삐도 더욱 강하게 죈다. 100억원 이상의 신규 보조사업을 추진할 때는 사전에 적격성을 조사하는 ‘보조사업 적격성 심사제도’가 시행되고 3년이 지난 보조사업은 연장 여부를 평가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렇게 마련된 내년 예산안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고용 취약계층인 청년·여성에 대한 일자리 지원 강화를 통해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고용 디딤돌 등 질 높은 일자리 연계 강화, 일 경험 기회 확대 등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 사업을 집중 지원하고 일·가정 양립문화 확산과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경력단절여성 취업 지원 강화 등을 통해 여성 친화적 고용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현재 각 부처가 펼치고 있는 일자리 프로그램을 수요자 입장에서 재설계함으로써 일자리 투자 사업의 체감도와 실효성을 높일 예정이다. 각 부처가 일자리 산업을 신설 또는 변경할 경우 사전 협의를 의무화함으로써 사업 중복을 방지하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낮은 사업에 대한 지원은 축소한다. 내년도 일자리 예산은 정부가 오는 4월 발표할 예정인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과 연계해 편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또 북한 핵·미사일 등에 대비한 핵심전력 보강과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문화산업 육성 등 미래 성장동력에 중점 투자하기로 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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