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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전쟁 끝난 한국...화웨이·에릭손만 웃는다

[이슈&워치]

설비투자했지만 장비·부품은

대부분 中·유럽 업체가 수주

토종업체 투자 낙수효과 없어

"2조원대 국고 수입 챙긴 정부

국내 투자 환류대책 마련해야"





“정부가 통신용 주파수를 늘려 설비투자가 늘면 뭐합니까. 죄다 중국·유럽 업체 잔치가 될 텐데요. 지난 5~6년간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수십조원씩 망설비 투자를 했지만 그 장비납품 물량은 에릭손이나 화웨이 같은 해외 대기업들이 대부분 챙겨갔어요.” (국내 통신장비 업계 중소기업 A사 관계자)

국내 통신장비 업계는 요즘 죽을 맛이다. 수년째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이동통신사들은 오는 2018년부터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를 곧 열겠다는 둥 4세대(4G) 주파수를 새로 대폭 확충한다는 둥 하며 연일 높은 기술경쟁력을 선전해댔지만 그에 따른 투자 낙수효과는 해외로 새어나가고 있다. 실제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국내 이통사들의 통신장비 총투자액(CAPEX 기준)은 41조3,000억여원대에 달해 연평균 7조원에 근접했지만 국내 통신장비 업계가 내수시장에서 올린 총매출은 연평균 1조원대를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의 지난해 하반기 자료를 봐도 국내 주요 통신장비 업체 103곳의 총매출은 2014년도 기준으로 1조81억원에 불과했다.

정부가 2일 롱텀에볼루션(LTE)용 4세대 이동통신주파수 경매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국내 장비산업계의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대형 이통사들이 기간망 고도화를 위한 장비를 대거 발주했지만 대부분 유럽·중국 업체들이 수주한 것으로 안다”며 “이번에 주파수를 낙찰받은 이통사들이 추가로 장비투자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부가 주파수 경매로 2조원대의 국고수입을 거둔 성공에만 만족하지 말고 후속 민간투자의 국내환류 대책을 고심해야 할 때라고 관련업계는 제언하고 있다. 정부의 어지간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액에 맞먹는 평균 7조원대의 통신설비 투자가 주파수할당 정책 등의 후속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 같은 국부의 해외유출을 최소화하며 국내 산업계로 환류시키면 기업 성장과 기술개발, 고용창출의 3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이동통신사들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술력의 미비 문제, 해외 장비업체들과의 관계 문제, 장비 시장 경쟁 활성화, 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국내 장비업체만을 편애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간부는 “산업 육성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산 통신장비만을 쓰는 것은 자칫하면 투자비용 상승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국내외 업체 간 적당한 경쟁도 필요하기 때문에 통신설비를 국내 업체 위주로 쓰게 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이통사의 임원 역시 “솔직히 국내 장비의 성능과 신뢰도가 유럽의 에릭손·노키아나 중국 화웨이와 같은 국제적 기업들에 비해 떨어진다”며 “검증되지 않은 국산품을 대규모로 발주했다가 통화품질 등에 이상이 생겨 영업과 고객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주요 장비는 아직 외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통신설비 업체들도 수긍하는 부분이다. 한국네트워크산업협회가 지난해 6월 말부터 7월 초 국내 461개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 통신장비는 가격과 기술·브랜드 모든 면에서 국제 경쟁력에서 뒤처졌다. 해외 경쟁사 대비 국산품의 브랜드 인지도는 75.1%로 매우 낮았고 기술력은 82.6%, 가격 경쟁력은 86.8%로 조사된 것이다. 심지어 선진국뿐 아니라 화웨이와 같은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력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내수시장에 의존할 게 아니라 해외 수출시장을 겨냥해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격차는 정부나 이통업계의 지원이 있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연간 평균 7조원대에 이르는 통신장비 ‘바잉파워(구매력)’를 토종 네트워크 장비 대표선수 육성의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국내 대·중소기업들에 몰아준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키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중소 무선 전송장비 업체 관계자는 “우리 장비가 우리 시장에서 문전박대당하고 품질검증의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외로 나갈 수 있겠느냐”며 “화웨이도 따지고 보면 자국 정부와 이통사들의 지원 속에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몸집을 불리고 기술과 서비스 검증의 기회를 축적해 오늘날 선진국 기업들을 바짝 추격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종기업 육성이 늦어지면 자칫 아예 해당 산업 생태계의 기반 자체가 점차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미 LG그룹의 경우 네트워크 장비사업을 일찌감치 접고 관련 기업을 매각한 지 오래며 해당 분야의 국내 유일한 대기업인 삼성전자마저도 지난해 하반기 네트워크 사업부문 매각설에 휩싸여 홍역을 앓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공식 부인하고 관련 사업 투자의지를 밝혔지만 단기간에 에릭손 등과 견주기는 쉽지 않다는 게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나머지 국내 업체들은 KMW나 다산네트워크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기업들이어서 더욱 기반이 취약하다.

따라서 정부와 이동통신업계가 토종기업들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및 물량발주 지원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4세대 통신장비의 경우 국내 대기업 및 중견기업 등이 고음질의 음성통화기술인 ‘VOLTE’ 기술, 서로 대역이 인접하지 않은 주파수를 묶어 통신속도 등을 높여주는 케리어 어그레이션(CA) 기술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만큼 이와 관련한 시장 개척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국내 통신기업들의 (네트워크) 가상화 통신기술 도입이 해외에 비해 느린 편이어서 적극적인 이 분야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전자업계 제언도 나오고 있어 이와 관련한 정부의 연구개발 및 시장확보 지원 등도 필요해 보인다. 또한 이르면 연내에 결정할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여부와 관련해 해당 주파수 대역이 주파수분할전송방식(FDD)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큰 만큼 해당 분야에서 장비발주 수주를 하기 위한 국내 장비업체들의 자구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민병권·김지영·권용민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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