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바르셀로나 동물원에 희귀한 아기 고릴라 한 마리가 선보였다. 중앙아프리카 적도 기니에서 어느 농부가 발견한 롤런드(lowland)고릴라였는데 온몸이 하얀 털로 뒤덮여 스페인어로 ‘눈송이’라는 뜻의 ‘코피토 데 니에베’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고릴라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면서 영화는 물론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색소결핍증(알비노증)에 걸려 있던 이 고릴라는 결국 40살의 나이에 고통을 견디지 못해 안락사로 최후를 맞고 말았다.
롤런드고릴라는 서아프리카 낮은 지대의 열대우림에 서식하는데 최근 숲 벌목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에볼라 바이러스까지 창궐해 멸종 직전 단계의 동물로 등록됐다. 아프리카에서는 고급 요리로 취급받는 바람에 밀렵꾼들의 불법적인 사냥이 기승을 부려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영화 ‘킹콩’에 나오는 고릴라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만큼 난폭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온순해 원주민들로부터 신비한 동물로 추앙받기도 했다.
롤런드고릴라는 인간의 DNA와 95~99%까지 동일한 유전형질을 갖고 있다. 영장류 중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고릴라는 겉보기와 달리 채식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나무 열매를 좋아하고 나뭇잎과 줄기·버섯 등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다양한 식물을 찾아 자연을 헤매다 보니 자연에서 발견한 다양한 약초로 자신의 몸을 치료하는 ‘약초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고릴라가 먹는 식물을 약으로 개발하려고 고릴라를 쫓아다니며 이들이 먹는 식물을 채집하는 과학자들도 있을 정도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동물로 롤런드고릴라가 꼽혔다는 소식이다. 한 마리당 가격이 무려 10억원을 웃돌고 있는데 식후에 허브 티를 마시는 독특한 습관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워낙 희소성이 높다 보니 실제로는 부르는 게 값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가 고릴라도 원치 않는 몸값만 올려놓은 탓이다./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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