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일당 독재가 효율적이고 중장기 국가 대계를 흔들리지 않고 집행할 수 있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인 우리나라는 주요 이슈마다 좌우파 대립, 이념 갈등 때문에 정부가 갈지자 행보를 하며 국가발전이 정체하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지인들이 한국의 계층, 세대 간 사회갈등을 보며 내뱉는 말이다. 단순 푸념을 넘어 진짜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아 아찔한 마음까지 든다. 바다 건너 민주주의 종주국인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사태까지 터지면서 민주주의 정치가 천덕꾸러기가 돼가는 느낌이다. 브렉시트는 집권에 눈먼 정치인의 사탕발림 선동과 이에 호응한 유권자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영국의 집권 보수당은 유럽연합(EU)을 탈퇴하면 일자리를 빼앗는 이민자를 차단하고 EU 분담금도 없어 영국의 과거 번영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의 유권자들은 투표 다음날 “EU가 뭐지”라고 물었다고 한다. 브렉시트 후폭풍은 EU는 물론 영국민을 혼란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EU는 ‘세계화’라는 도도한 문명사적 흐름의 유럽판이었다. 한 국가가 거부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자본·노동·상품·서비스 교류는 국가 경제발전의 거스를 수 없는 상수이다. 문제는 교류 과정에서 하층 노동자 등 서민들이 실직 등으로 고통받는 것이다. 세계화의 불편한 진실이다. 영국 정부는 EU 탈퇴를 의제로 내거는 대신에 하층 노동자 등에 대한 복지와 일자리 창출에 나섰어야 했다.
브렉시트 사태는 민주주의가 다루기에 따라 포퓰리즘에 빠지며 우중 정치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 우중정치를 대체할 그 어떤 우월한 체제도 인류는 아직 고안해내지 못했다. 이는 인류 역사가 증명한다. 1차 대전 이후 들어선 독일의 바이마르 민주공화국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파시스트 세력인 히틀러의 나치가 들어섰다. 북한도 전체주의와 파시즘에 다름 아니다. 최근 신고립주의와 이민 배척을 내세우며 주목받고 있는 미국 대선의 트럼프 돌풍도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기성 정치가 민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반사작용에 기인한다.
2차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민주주의는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나마 가장 덜 나쁜 정치 제도다”라고 한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필자는 특파원으로 중국에 3년여간 체류했다. 당시 시진핑 주석이 취임했다. 그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부패에 찌든 공산당 개혁이었다. 하지만 일당 독재의 공산당이 다른 당의 견제와 균형 없이 자기 자신을 개혁해야 하는 역설에 처했다.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 당장은 일사불란한 효율성이 있을지라도 국유기업 중심의 자본주의, 이른바 국가 자본주의는 시장이 요구하는 혁신 기제와 자율성이 없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정치인과 유권자들이다. 정치 공학의 잔재주와 이념과 계층 갈등을 부추겨 당장 집권을 바라는 정치꾼이 아니라 100년 후를 내다보고 국민 통합과 어젠다 세팅을 할 줄 아는 정치인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지금 같은 저성장에다 계층·세대 갈등이 지속되면 대한민국 역사상 현세대보다 못사는 후세대가 처음 등장할 것이다.
한국에 차기 대선과 맞물려 개헌 논의가 일고 있다. 개헌 의제가 특정 세력의 권력 재창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개헌과 함께 우리 사회가 당면한 빈부 격차, 세대 갈등, 비정규직, 남북 평화 공존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진지하게 어젠다를 설정하고 국민 통합의 장을 열어나가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정치인이 중장기적 비전 없이 잘못된 의제를 들고 나올 경우에 사회를 분열시키며 한국판 브렉시트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난 세기 국제질서를 조각했던 영·미에 포퓰리즘과 고립주의가 득세하며 지구촌 민주주의가 혼돈과 불안의 각자도생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안팎에서 도전받고 있다. 민주주의를 어디로 튈지 모를 ‘괴물’로 만들지, 아니면 국민 행복과 번영의 ‘디딤돌’로 키워나갈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y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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