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김정일 여사가 1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23년생인 고인은 1944년 5월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혼인해 한평생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다. 특히 1945년 11월 설립된 한진상사가 글로벌 종합물류 기업인 한진그룹으로 성장한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적으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고인은 조 선대 회장과의 사이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현숙씨 등 4남 1녀를 자녀로 두었다. 둘째 며느리였지만 맏며느리 역할을 하며 살림을 도맡아 어른들을 봉양하고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누이와 시동생들을 어머니처럼 보살피고 뒷바라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고인은 불심을 바탕으로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지극 정성으로 기도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조중훈 창업자가 사업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데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고 조중훈 회장이 베트남 전쟁 현지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할 당시 고인이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전장에서 함께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베트남 현지에 마련된 김치 공장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고 여러 가지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평생을 검소하고 살아온 고인은 ‘식사는 아내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신조를 토대로 단 한 명의 고용원 없이 손수 식사를 마련하고 집안 청소를 도맡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추운 겨울에도 꼭 필요한 방에서만 난방을 할 만큼 절제와 검약이 배어 있었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나눠주는 삶을 살았다. 늘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고인은 임종을 앞두고도 다른 사람들이 힘들지 않게 모든 장례 절차는 조금씩 모은 쌈짓돈으로 소박하게 치러주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고인은 자식들에게 인성에서는 검소와 성실을, 일에서는 프로를 강조했다. 자식을 엄하게 교육시켰고 선진지식을 습득하도록 조기 유학을 보내 자식들에게 전문가의 길을 걷도록 했다. 조양호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현재의 조건에서 행복을 찾아라.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줬다고 말했다. 빈소는 연대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이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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