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분당에 거주하는 전업주부 이수경(45·가명)씨는 요새 북한과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지난해 해병대에 입대한 큰아들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혹여 북한이 그릇된 판단을 해 전쟁 가능성이 고조될 경우 당장 군에 있는 아들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씨는 대북 리스크가 높아지는 요즘 들어 군에 간 아들 걱정에 안보에 흔들림 없는 대선후보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고 토로한다. 이른바 안보 이슈에 민감한 ‘시큐리티맘(security mom)’들의 표심이 흔들리고 있는 모양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피살 등 잇따라 터져 나온 북한발 안보 이슈가 정국을 뒤흔들면서 40~50대 주부층이 올해 대선 판도를 좌우할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30% 안팎을 차지하는 가정주부들의 표심이 누구에게 쏠리느냐에 따라 대선 결과가 급변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성향의 주부 유권자들이 그동안 탄핵정국 속에 속내를 감추는 ‘샤이 보수’로 숨어 있다가 안보 문제를 계기로 표심을 본격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상 선거를 앞두고 북한발 안보 리스크가 부각되면 진보보다는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4월까지만 해도 50%가 넘는 지지율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압도하던 진보성향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6월 서해교전 발발 이후 순식간에 지지율이 30%로 곤두박질치면서 보수성향의 이회창 후보(40.6%)에게 선두자리를 내줬다. 그 이후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로 결국 판세를 뒤집기는 했지만 안보 이슈는 대선 막판까지 발목을 잡았다.
올해 대선과 마찬가지로 야당 경선이 사실상의 본선으로 여겨지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에도 안보 이슈는 대선주자의 당락을 결정짓는 변수가 됐다. 대선을 1년 앞둔 2006년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뒤처지던 이명박 후보는 7월5일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로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그해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당내 경쟁에서 승기를 잡은 이명박 후보는 결국 이듬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 후보가 나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또다시 불거진 안보 리스크는 안정 지향적인 보수성향의 40~50대 가정주부들의 표심을 흔들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중장년층 주부들은 북한 리스크를 뒤엎을 만한 더 큰 이벤트가 등장하지 않는 한 안보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전체 유권자의 25~30%를 차지하는 주부들이 누구에게 표를 몰아주느냐에 따라 대선 판도가 요동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탄핵정국 속에 표심을 드러내지 않은 ‘샤이 보수’ 가운데 중년의 주부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안보 이슈가 보수표를 결집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안보를 중시하는 엄마들의 힘은 이미 미국 대선에서 입증된 바 있다. 2004년 대선 직전 제2의 9·11테러를 경고하는 오사마 빈라덴의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자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안보 문제에 관심이 높은 일명 ‘시큐리티맘’들이 결집하며 보수성향의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했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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