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선도할 수 있는 장점들이 너무 많습니다. 딥러닝·머신러닝 등 인공지능(AI) 분야에 관심이 많고 의료 전문가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죠. 다만 데이터 보안에 관련된 규제가 너무 강력해 다양한 장점들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앤드류 코프(사진) 노키아코리아 대표는 13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국 정부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할 생각이라면 우선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코프 대표는 이날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가 개최한 ‘핀란드 헬스테크 세미나’의 연사로 참여해 노키아의 디지털 헬스 전략과 경험을 소개했다. 노키아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휴대폰 단말기 시장의 절대 강자였지만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모바일 사업 부문을 매각한 이후로는 통신·네트워크 사업에 집중해왔다. 특히 ICT 기술을 의료와 접목해 질병 예측과 의료비 절감을 꾀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노키아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한 핵심 분야 중 하나다.
코프 대표는 개인의 건강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유하고 활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집한 심박 수·혈당 등의 건강데이터를 분석해 심장병, 신경 발작 등의 건강 사고를 예측·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이렇게 수집된 거대한 데이터를 의료·건강 전문가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혁신적인 치료법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미래적 예방 의학을 달성하기 위해선 개인이 자신의 건강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의 디지털 헬스 산업 발전이 더딘 이유를 개인 건강데이터 공유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현행 법 체계에서 찾으며 핀란드 정부 정책을 사례로 들었다. 코프 대표는 “핀란드에서는 개인이 요구하고 동의할 경우 어느 의료기관에서도 지금껏 쌓아온 전체 의료기록을 받아볼 수 있도록 입법화했다”며 “특히 개인이 사용을 동의한 익명화된 의료 정보에 대해서는 연구소나 병원, 기업에 이르기까지 2차적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우선 언급했지만 보안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개인 데이터를 이용하는 일인만큼 보안이야말로 이 산업의 가장 중요한 파트”라며 “노키아는 현재 미국 정부보다 더욱 강력한 보안 기준을 설정해 시장 및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코프 대표는 한국처럼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디지털 헬스 산업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미국·영국 등 선진국 치료비의 80%가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에 쓰이고 있다”며 “디지털 기기를 통해 심박 수나 혈압을 상시 관리한다면 만성질환 치료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의료 전문가의 수에 비해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난다”며 “의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미래의 솔루션이 바로 디지털 헬스”라고 강조했다.
노키아는 지난해 4월 스마트워치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헬스기기 스타트업 ‘위딩스’를 인수하며 애플·삼성전자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코프 대표는 “경쟁사에게는 (스마트) 워치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워치 이상의 것들이 있다”며 “체중계부터 비만 측정기, 체온계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더 많은 건강 데이터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하고 그만큼 더욱 정확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유수의 미국·유럽 의료기관과 협업을 통해 디바이스 및 데이터 보안 기술에 대한 신뢰를 축적하는 중”이라며 “특히 웨어러블 제품의 경우 한국 시장 진출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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