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소녀시대’는 1970년대 후반 대구를 배경으로 발랄하고 발칙한 사춘기 여고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코믹로망스 드라마. 이종현은 극중 약국집 잡일을 도와주는 일명 ‘약방 총각’ 주영춘 역을 맡았다.
영춘은 폼생폼사하는 전형적 건달이면서도 안 어울리게 약국에 눌러앉아 있어 그 전사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손재주가 좋아서 동네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해결해주기도 하는데, 겉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깊어 정감 가는 인물이었다.
18일 서울 중구 명동 FNC WOW에서 가진 ‘란제리 소녀시대’ 종영 인터뷰에서 이종현은 “작품이 끝날 때쯤 되니 스스로 더 몰아칠 걸 후회도 했다. 아쉽지만 다들 열심히 했고 따뜻하게 찍어서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8부작이 금방 끝났는데 시원섭섭함이 엄청 크게 다가오더라. 아무래도 짧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열정적으로 한 것 같다. 다들 빨리 캐릭터를 끌어올리려고 했다”고 아쉬움 섞인 소감을 전했다.
8부작으로 제작된 드라마에서 이야기와 인물들의 감정선을 어떻게 압축적으로 전하려 했을까. 이종현은 “12회였다면 러브라인을 좀 더 섬세하게 파고들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처음에는 대본이 4개(4회)였는데 8개(8회)로 늘린 거다. 영화는 2시간이어도 이야기에 납득이 되듯 사이사이를 메우면서 8회를 채웠다”며 “영춘이는 촬영하는 와중에도 매력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했다. 준비 기간이 짧았다. 일주일 전에 캐스팅 되고 일주일 후에 촬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영춘은 ‘란제리 소녀시대’ 속에서 그 배경이 드러나지 않은 유일한 인물로, 가장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성격은 ‘그렇지만 내 여자에겐 잘 하겠지’ 식의 무뚝뚝함 가운데도 사랑 앞에 다정한 일면을 드러냈다.
이종현은 “영춘은 요즘 여성들이 좋아하고 바라는 남성상이라 생각한다. 남들에겐 못 해도 자기 여자에겐 잘 하는 남자인데, 그런 건 닮아야겠다. 영춘이는 내 어릴 때 모습과 닮은 것 같다. 내가 학창시절 때 느꼈던 감정을 보여준다. 그 때는 남중, 남고를 나와서 여학생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뛰고 어쩌다 손이 닿으면 놀라는 풋풋한 감정이 있었다”고 실제 자신과 영춘의 닮은 점을 비교하며 “이제 서울 생활 10년째인데 지금은 그런 감정이 퇴색된 것 같다. 그래도 순수를 추구하려고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산 출신인 이종현에게 대구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번 작품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사투리 습득에 또 다른 어려움이 없었는지 묻자 “‘마이 온리 러브송’ 때 사투리 연기를 한 번 하기는 했는데 이번만큼 길게 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극중에서 이번에 부산 사투리를 썼다. 감독님과 미팅을 할 때 영춘이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캐릭터여서 짧은 시간에 어설프게 다른 지역 사투리를 배우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부산 사투리를 그대로 썼다”고 대답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산과 대구의 사투리가 훨씬 달랐다. 보나 씨가 한 대구 사투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부산과 너무 달랐다. ‘뭐하노?’만 봐도 부산과 대구의 억양이 다르다. 이번 작품에 들어가면서 그 지역의 역사부터 공부를 해봤다. 대구에 안동 등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많이 와서 다양한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있다.”
1990년생인 이종현은 ‘란제리 소녀시대’ 출연진 중 가장 맏형이었다. 그러다보니 따랐던 책임감과 역할도 이전 작품들에 비해 커졌다고. “내 성격이 얻어먹는 것보다 사는 게 편하다. 이번에는 형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밥이라도 챙겨주고 응원해주는 게 역할을 다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한 건 없어도 모두들 잘 따라줘서 고마웠다. 어제까지도 카톡방에서 수많은 말들을 했다. 자기 전까지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할 만큼 돈독하다.”
정희 역의 보나, 애숙 역의 도희는 가수 출신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씨엔블루 이종현에게는 그들의 행보가 남다른 동질감으로 다가왔을 터. “특별히 따로 만나서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서로 무한한 응원을 해줬다. 내가 겪었던 바를 똑같이 겪는 친구들이어서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좋은 경험인지를 알고 있어서 응원을 하게 되더라. 어린 친구들인데도 많이 배웠다. 왠지 이상한 책임의식도 많이 느꼈다. 힘들 텐데도 웃으면서 꿋꿋하게 연기를 하더라.”
‘란제리 소녀시대’의 메인 커플 정희(보나 분)와 동문(서영주 분)도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춘과 혜주(채서진 분) 서브커플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시청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 서진 씨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에게 다양한 점을 배웠다. 서진 씨 성격이 평소에도 진중하고 천생 여자 같은 느낌이었다. 배우로서 평소 모습이 그럴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배울 점이었던 것 같다. 서진 씨는 그런 태도가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 몸에 배어있더라.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서 연기를 했는데, 남중, 남고를 나와서 여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 떨렸던 풋풋한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앞선 시대 속 청춘들의 사랑을 정취 있게 그렸다는 점에서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교되기도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사실 ‘응칠’과 ‘응사’ 때 출연 관련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씨엔블루 투어 일정이랑 겹치면 부담이 될까봐 좋은 기회였지만 출연하지 못했다. ‘응답하라’도 그렇고 ‘란제리 소녀시대’도 그렇고 앞으로도 시대물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한다.”
90년생으로서 태어나기도 전인 70년대의 감성을 표현하기가 쉬운 과정은 아니었겠다고 묻자 “그 작업이 제일 힘들었다. 끝날 때까지 계속 고민됐다. 인간적으로 친한 것과 연기 호흡은 또 별개여서 책임감이 많이 생겼다. 조금 더 배우들과 소통하려 했다. 그동안에는 내 거 하기에 바빴는데 책임감을 진 것은 처음이었다. 주위 친구들이 어려서 감각적이었는데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들 연기를 너무 잘 했다.”
이종현은 이번 드라마로 연기의 참맛을 깨닫기도 했는데 절친 김래원, 지창욱, 최태준의 조언을 절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주변에 연기하는 선배, 친구들이 많은데 기억에 남는 말 중 하나가 지창욱 형의 ‘네가 작품을 하면서 네가 생각했던 것과 관객들이 생각하는 게 일치할 때가 올 거다. 그 때 네가 연기를 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였다. ‘란제리’ 5화쯤에 그걸 느꼈다. 이번 작품은 확실히 특별했다. 이번만큼 호평을 많이 보내주신 것도 처음이었다. ‘연기할 때 이 순간에 짜릿하다’고 얘기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태준이, 지창욱 형, 김래원 선배님도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그러면서 이종현은 “나는 가리지 않고 다 연기하고 싶다. 경험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캐릭터는 다 연기해보고 싶다”며 연기자로서도 욕심이 더욱 깊어졌음을 드러냈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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