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의 중단 여부를 둘러싼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탈원전에 대한 논란이 커졌지만 바깥에서는 우리 원전 산업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 원전 산업은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세계 시장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꾸준히 국내에서 기술개발에 전념했고 지난해 말부터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해 8월 한국형 원전(APR-1400)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심사 3단계를 통과한 것이다. 경쟁국인 프랑스는 까다로운 심사요건을 맞추지 못해 스스로 심사를 중단했고 일본은 신청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1단계만 통과했다. APR-1400은 건설 재개·중단 여부를 놓고 공론화가 진행 중인 신고리 5·6호기뿐 아니라 신고리 3·4호기와 신한울 1·2호기에 적용됐고UAE에도 수출됐다.
10월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유럽 수출형 원전으로 개발한 EU-APR 표준설계가 유럽 사업자요건(EUR) 인증 본심사를 통과했다. EUR 인증은 유럽에서 원전 사업을 하는 모든 회사가 필수적으로 따야 하는 원자로 설계표준요건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집트도 원전을 지을 때 EUR 인증을 요구한다. 12개국의 14개 원전사업자로 구성된 유럽사업자협회가 유럽에 건설될 신규 원전의 안전성·경제성 등을 심사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일본·러시아·프랑스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이름을 올렸고 이는 이번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로 곧바로 이어졌다.
국내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이 가속화됐음에도 영국과 체코 등에서 우리나라 원전 산업계에 러브콜을 보냈던 것도 이 때문이다. 10월 체코는 얀 슈틀러 원전 특사와 페트르 크르스 원자력안전위원회 부위원장을 잇따라 한국에 보내 계획하고 있는 자국 원전 사업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원전의 기술력과 안전성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만큼 문재인 정부가 국내 원전 정책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는 원전을 지우지만 산업의 ‘밸류체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외수출이 필요하다는 게 현재 정부의 방침이다. 특히 천지 1·2호기에 짓기로 했던 차세대 원전(ARR+) 등 기술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라도 국내 원전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APR+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며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가) 세계적으로 다시 한 번 인정받은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사장되지 않도록 국내 탈원전 정책도 재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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